머릿 속이 온통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점철되었던 그 때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점점 동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던 요즘이었다. 가방에는 아이팟 터치 2세대나 아이스크림 폰을 담고, 한 손으론 유니클로(Uniqro)나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의 쇼핑백을 메고서 남자친구와 신사동의 '핫 스폿'이라는 곳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헤어지는 식의, 루트가 뻔한 데이트 코스들. (숨이 차다) 그 속에서 '저런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며 '무심한듯 시크한척'하고 싶었던 나는 '읽어야지'라고 생각만 했던 김사과의 장편소설 <미나>와 만났다. 아니, 재회했다.

학교를 다닐 때 '이 책이 아니면 글쓰는 사람이 아니죠'라는 말에 냉큼 3년치를 신청했던 한 문예 계간지 속에서 김사과라는 작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나로 하여금 대학교 3학년이라는 신분으로 데뷔한 소설가 한유주와 더불어 '그야말로 엄친딸이구나'라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주는 작가였다. 짧게 인터뷰한 기사만 봐도 그녀는 외고를 자퇴하고서 검정고시를 통해 천재 아니면 또라이만 모인다는 한예종에 간 데다가 '영이'라는 파괴적인 소설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어마어마하게 길고 화려한 수식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데뷔작 <영이>를 만났을 때도 나는 쉽게 소설의 호불호를 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등장은 한 마디로 '교란'이었다. 

소설 속에는 소위 엄친딸이라 불리는 여고생 '미나'와 그녀만큼 표면적으로는 잘난 여고생이나 미나로 인해 태생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수정'이란 두 인물이 등장한다. 친구의 자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다니게 된 미나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창 사춘기인 수정의 관계 또한, 소설 전체의 명징하지 않은 메세지만큼이나 묘하다. 애증을 넘어서, 질투를 넘어서, 설익은 분노를 넘어서 마치 휴화산이 폭발하듯 마무리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농밀한 내러티브는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로 하여금 개운함보다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교복을 입던 시절의 기억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추억이다. 나부터가 몇 년 전에는 소설 속의 소녀들처럼 길거리에서 파는 스타킹마냥 흔하게 널린 여고생떼 중 하나였기 때문일까. 고3 당시, 수능을 보고나서 한 학교는 보기좋게 떨어지고, 20점 하향한 학교도 어이없게 떨어지고, 희망을 갖고 있던 마지막 학교에서 예비번호 한 자리 수를 받는 3연패를 경험한 나. 나 또한 제도의 무수한 피해자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의 '3연패'는 나라는 인간의 20대 초반을 지배하는 피해망상을 고밀도로 증폭시키는 사건의 발단이었던 듯 하다. 재수를 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흘려들은 채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수험생이란 끔찍한 직업을 다시는 갖고 싶지 않았으며, 집안 형편 또한 재수를 할 처지가 못되었다) 단지 전공만 보고서 이름 없는 전문 대학의 추가 모집 원서를 집어넣었다. 학교 생활은 밋밋하단 것 빼고는 그닥 나쁘지 않았다. 나름대로 칭찬도 받고 상도 타며 잘 다녔다. 물론 남들처럼 적당 농도 이상의 재미가 가미된 대학 생활은 즐길 수 없었지만 말이다. (MT도 한 번도 가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남자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했던 지독한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 도서관에 가거나 음악을 들으며 서울의 이 곳 저 곳을 홀로 탐방하고 다니는 게 당시 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용기를 내서 음악 동호회로 몇몇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시를 쓰게 되었고 소설을 가끔씩이라도 찾아읽었던 게 그나마 그 때 잘한 거라면 잘한 일일까. 아무튼 '대학생의 특혜'라는 것을 여유롭게 누리기에, 내 캠퍼스 라이프는 너무 춥고 어두웠으며 가난했다.)

그렇게 내 10대와 20대의 길목은 피해 망상만 가득한,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그 피해의식은 지금도 미처 씻어내지못한 라면 찌꺼기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나.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나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미나와 수정을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리멸렬한 과거와 작별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어쩌면 적지 않게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수능 시험을 보기 전날, 나는 새벽 2시까지 끙끙거리며 울었다. 요즘도 자주 고등학생이 되거나,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푸는 꿈을 꾸는 나에겐 씻을 수 없는 그 때 이후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나는 10대 시절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고 실패도 하고 상처도 받았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내가 밟고 지나온 돌들이 모두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부터가 내가 이제 어느 정도는 철이 들었다는 의미였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나에겐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기준이 없다. 예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는 2008년의 나는 그저 <미나>의 책장을 덮으며 회색 시험지처럼 쓸쓸했던 모노톤의 추억들을 상기할 뿐이다. 지금도 인공 닭장에서는 수많은 무정란들이 태어난다.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알들의 숨구멍은 외부의 힘에 의해 철저히 막혀있다.

하이퍼리얼리티를 표방한듯한 서사와 지적 사고가 거세된 듯한 소녀들의 구어체가 짬뽕되어 낯설은 이야기로 탄생한 <미나>. 책 속에서의 미나와 수정은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잠바와 아디다스 가방처럼 유행조차 재단된 시대를 살아가는 소년소녀를 표방한다. 80년대에 태어난 독자들이 두 소녀들을 통해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결코 낯설지 않듯, 미나가 수정을 칼로 난자하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소설의 전체 흐름을 따져본다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비상식이 상식보다 더 상식적인 것으로 통하는 세상 아니던가. 미나와 수정이 당한 세상의 폭리에 비하면 수정의 손을 거친 미나의 죽음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제도의 시스템 내에서 영리하게 적응하나, 끝까지 지독한 기계로 남았던 미나가 천진할 정도로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서, 작가는 수정의 칼자루를 통해 세상을 조소하는 것이다. 이는 어른들이 '철없는 고딩들의 치기와 피해의식 과잉'이라고 치부하고 싶어하는, 더럽고 추잡한 세상의 단면 자체를 보여준다.

작가의 문체는 충분히 쿨하지만 쿨한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어를 가지고 노는 장난만 배운 일부 풋내기 작가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그녀는 찌고 쪄서 충분히 익혀낸 문장으로 세상의 목을 영리하지만 안전하게 비튼다. 사색이 사치가 되고 맹목적인 소비가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현재, 폐부를 찌르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파괴적이고도 젠틀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독자가 느껴야하는, 혹은 해야 하는 일은 미나와 수정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토록 충격적인 엔딩은 독자가 감상평을 남길 틈마저 일찌감치 거세해버리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이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나>의 결론엔 일말의 동정심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쓸쓸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GOOD

1. 지금-오늘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영상미 넘치는 필력.

2. 세상의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수정의 심정에 대한 파워풀한 서사.

BAD

1. 수정과 친구-연인 사이의 관계이자 미나의 친오빠인 민호에겐 뚜렷한 역할이 없다. 수정이 애증하던 엄친딸을 칼로 죽였다는 걸 이해하고 나면, 자기 친여동생 죽은 걸 보는 10대 소년의 태도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친오빠 맞아?

2. U2나 라디오헤드, 피오나 애플, 뷔욕 등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형과 누나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 듣는 소녀들의 대화 치고는 끝없이 가벼운 '수정'과 '미나'의 수다들. 차라리 빅뱅이나 원더걸스라고 하는게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3. 어린 애들이 담배를 너무 자주 태우는구나. 어차피 속담배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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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미나> (2008) :: midnight madness

머릿 속이 온통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점철되었던 그 때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점점 동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던 요즘이었다. 가방에는 아이팟 터치 2세대나 아이스크림 폰을 담고, 한 손으론 유니클로(Uniqro)나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의 쇼핑백을 메고서 남자친구와 신사동의 '핫 스폿'이라는 곳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헤어지는 식의, 루트가 뻔한 데이트 코스들. (숨이 차다) 그 속에서 '저런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며 '무심한듯 시크한척'하고 싶었던 나는 '읽어야지'라고 생각만 했던 김사과의 장편소설 <미나>와 만났다. 아니, 재회했다.

학교를 다닐 때 '이 책이 아니면 글쓰는 사람이 아니죠'라는 말에 냉큼 3년치를 신청했던 한 문예 계간지 속에서 김사과라는 작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나로 하여금 대학교 3학년이라는 신분으로 데뷔한 소설가 한유주와 더불어 '그야말로 엄친딸이구나'라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주는 작가였다. 짧게 인터뷰한 기사만 봐도 그녀는 외고를 자퇴하고서 검정고시를 통해 천재 아니면 또라이만 모인다는 한예종에 간 데다가 '영이'라는 파괴적인 소설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어마어마하게 길고 화려한 수식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데뷔작 <영이>를 만났을 때도 나는 쉽게 소설의 호불호를 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등장은 한 마디로 '교란'이었다. 

소설 속에는 소위 엄친딸이라 불리는 여고생 '미나'와 그녀만큼 표면적으로는 잘난 여고생이나 미나로 인해 태생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수정'이란 두 인물이 등장한다. 친구의 자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다니게 된 미나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창 사춘기인 수정의 관계 또한, 소설 전체의 명징하지 않은 메세지만큼이나 묘하다. 애증을 넘어서, 질투를 넘어서, 설익은 분노를 넘어서 마치 휴화산이 폭발하듯 마무리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농밀한 내러티브는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로 하여금 개운함보다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교복을 입던 시절의 기억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추억이다. 나부터가 몇 년 전에는 소설 속의 소녀들처럼 길거리에서 파는 스타킹마냥 흔하게 널린 여고생떼 중 하나였기 때문일까. 고3 당시, 수능을 보고나서 한 학교는 보기좋게 떨어지고, 20점 하향한 학교도 어이없게 떨어지고, 희망을 갖고 있던 마지막 학교에서 예비번호 한 자리 수를 받는 3연패를 경험한 나. 나 또한 제도의 무수한 피해자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의 '3연패'는 나라는 인간의 20대 초반을 지배하는 피해망상을 고밀도로 증폭시키는 사건의 발단이었던 듯 하다. 재수를 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흘려들은 채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수험생이란 끔찍한 직업을 다시는 갖고 싶지 않았으며, 집안 형편 또한 재수를 할 처지가 못되었다) 단지 전공만 보고서 이름 없는 전문 대학의 추가 모집 원서를 집어넣었다. 학교 생활은 밋밋하단 것 빼고는 그닥 나쁘지 않았다. 나름대로 칭찬도 받고 상도 타며 잘 다녔다. 물론 남들처럼 적당 농도 이상의 재미가 가미된 대학 생활은 즐길 수 없었지만 말이다. (MT도 한 번도 가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남자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했던 지독한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 도서관에 가거나 음악을 들으며 서울의 이 곳 저 곳을 홀로 탐방하고 다니는 게 당시 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용기를 내서 음악 동호회로 몇몇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시를 쓰게 되었고 소설을 가끔씩이라도 찾아읽었던 게 그나마 그 때 잘한 거라면 잘한 일일까. 아무튼 '대학생의 특혜'라는 것을 여유롭게 누리기에, 내 캠퍼스 라이프는 너무 춥고 어두웠으며 가난했다.)

그렇게 내 10대와 20대의 길목은 피해 망상만 가득한,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그 피해의식은 지금도 미처 씻어내지못한 라면 찌꺼기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나.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나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미나와 수정을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리멸렬한 과거와 작별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어쩌면 적지 않게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수능 시험을 보기 전날, 나는 새벽 2시까지 끙끙거리며 울었다. 요즘도 자주 고등학생이 되거나,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푸는 꿈을 꾸는 나에겐 씻을 수 없는 그 때 이후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나는 10대 시절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고 실패도 하고 상처도 받았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내가 밟고 지나온 돌들이 모두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부터가 내가 이제 어느 정도는 철이 들었다는 의미였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나에겐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기준이 없다. 예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는 2008년의 나는 그저 <미나>의 책장을 덮으며 회색 시험지처럼 쓸쓸했던 모노톤의 추억들을 상기할 뿐이다. 지금도 인공 닭장에서는 수많은 무정란들이 태어난다.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알들의 숨구멍은 외부의 힘에 의해 철저히 막혀있다.

하이퍼리얼리티를 표방한듯한 서사와 지적 사고가 거세된 듯한 소녀들의 구어체가 짬뽕되어 낯설은 이야기로 탄생한 <미나>. 책 속에서의 미나와 수정은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잠바와 아디다스 가방처럼 유행조차 재단된 시대를 살아가는 소년소녀를 표방한다. 80년대에 태어난 독자들이 두 소녀들을 통해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결코 낯설지 않듯, 미나가 수정을 칼로 난자하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소설의 전체 흐름을 따져본다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비상식이 상식보다 더 상식적인 것으로 통하는 세상 아니던가. 미나와 수정이 당한 세상의 폭리에 비하면 수정의 손을 거친 미나의 죽음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제도의 시스템 내에서 영리하게 적응하나, 끝까지 지독한 기계로 남았던 미나가 천진할 정도로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서, 작가는 수정의 칼자루를 통해 세상을 조소하는 것이다. 이는 어른들이 '철없는 고딩들의 치기와 피해의식 과잉'이라고 치부하고 싶어하는, 더럽고 추잡한 세상의 단면 자체를 보여준다.

작가의 문체는 충분히 쿨하지만 쿨한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어를 가지고 노는 장난만 배운 일부 풋내기 작가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그녀는 찌고 쪄서 충분히 익혀낸 문장으로 세상의 목을 영리하지만 안전하게 비튼다. 사색이 사치가 되고 맹목적인 소비가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현재, 폐부를 찌르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파괴적이고도 젠틀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독자가 느껴야하는, 혹은 해야 하는 일은 미나와 수정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토록 충격적인 엔딩은 독자가 감상평을 남길 틈마저 일찌감치 거세해버리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이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나>의 결론엔 일말의 동정심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쓸쓸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GOOD

1. 지금-오늘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영상미 넘치는 필력.

2. 세상의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수정의 심정에 대한 파워풀한 서사.

BAD

1. 수정과 친구-연인 사이의 관계이자 미나의 친오빠인 민호에겐 뚜렷한 역할이 없다. 수정이 애증하던 엄친딸을 칼로 죽였다는 걸 이해하고 나면, 자기 친여동생 죽은 걸 보는 10대 소년의 태도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친오빠 맞아?

2. U2나 라디오헤드, 피오나 애플, 뷔욕 등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형과 누나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 듣는 소녀들의 대화 치고는 끝없이 가벼운 '수정'과 '미나'의 수다들. 차라리 빅뱅이나 원더걸스라고 하는게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3. 어린 애들이 담배를 너무 자주 태우는구나. 어차피 속담배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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