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맥심 코리아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JY6UylCPFB8)


젊고 예쁘며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여성이 DJ 부스 위에 선다. 어디를 봐도 눈에 띄는 외모와 몸매다. 그런데 보통 디제이들과는 조금 다른 행동을 한단다. DJ 덱 앞에서 뜬금없이 한 바퀴 돌고, 자신이 만들었다는 춤을 춘단다. ‘피리춤’이라나, 아무튼 그녀의 시그니처 댄스라고 한다. 그녀의 영상에는 많은 악성 댓글이 달린다. 그녀를 욕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  DJ라면 무엇보다 음악에 집중을 해야 하거늘, 그녀의 부족한 음악성이 문제라고 한다. 사람들을 춤 추게 만들라고 했더니 자기가 춤을 춘단다. 뭔가 한다고는 하는데 쓰레기같고 허접스럽단다. 그것이 사람들이 소다를 욕하는 주된 이유다.


여성 혐오의 극단이 창녀 혐오라면, (창녀 혐오는 남성(주체)-여성(객체)으로 나뉘는 젠더 이분법에서 남성 주체의 성적 욕구 해결 ‘도구’로서, 여성 객체의 주체성이 완전히 상실됐을 때 성립한다. 창녀는 남성의 권력욕과 지배의식에 완전히 굴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DJ 소다는 창녀 혐오의 기믹(gimmick ; 술책)을 전면적으로 사용한다. 음악보다는 비주얼의 섹슈얼함에 집중하며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노출이 심한 옷을 즐긴다 (그녀의 취향이자 콘셉트인 것 같다). PC 화면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비주얼로, 남성 판타지가 내면화된 섹스 어필을 꾀한다. 소다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을 과하게 좋아하거나, 과하게 싫어하게 만든다. 혹은 좋아도 싫어하는 행동을 취하게끔 한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자극적이다.


DJ 소다에 대해 일률적이고 극단적인 욕설이 쏟아지는 현상, 나는 이것을 ‘소다 혐오’라고 부르고 싶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와 미모에 드러난 극단의 여성성에는 열광하면서, 동시에 디제이로서의 실력이 부족하고 미숙해 보이는 행동 패턴에 대해서는 입에 불붙은 듯 화를 내는 사람들의 이중적 반응 때문이다. 주로 실력이, 때로는 외모가 욕을 먹는다. 대체로 둘 다 욕을 먹는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욕을 먹는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 발언들의 발화자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나는 그녀를 혐오하는 다수 남성들의 반응에서, 우습게도 마누라와 여자친구 몰래 유흥업소에 다니는 동시에 ‘성 노동자 여성’이 팁을 달라는 요구에는 거칠게 불응하는 성인 남성들의 이중적 모습이 연상되었다. 음악도 못하는 저런 야하고 천박한 여자 디제이’년’은 관객을 신나게 해주는 것에나 집중하면 될 것을, 혹은 ‘업소’에서 가만히 내가 명령하는 대로만 순응하면 될 것을, 그녀는 굳이 ‘주체적으로’ 커다란 가슴을 흔들어대며 무대의 질을 떨어뜨린다. 한 마디로 예상치 못 한 행동으로 오빠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정말로 그녀가 도덕의 절대 가치에 어긋나거나 법에 저촉되는 죄를 지었다면 사회에서 ‘매장’당하거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게 수순일 텐데 왠걸, 그녀의 몸값은 줄곧 상승하고 있는 모양이다. 근래는 동남아 클럽 시장에 진출했단다. 유명 포털 사이트가 만든 VOD 어플리케이션의 실시간 방송에도 출연했단다. 현실이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공연/행사 산업의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녀를 매장시키고 싶은 사람들의 분노가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설마 겉으로는 무지막지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뒤에서 은밀히 그녀의 영상을 챙겨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그녀를 죽일 듯이 욕을 하던 사람들이?


이쯤 되면 그녀를 욕 하는 동시에 영상을 찾아보는 이들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굳이 추측하자면,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심리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드라마 전개의 극적 구조와 부족한 당위성에 쉽게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단발적인 재미와 말초적 흥미 때문에 그것을 본다. 욕을 하면서도 계속 본다. 뒤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표독스러운 드라마 속 ‘악녀’는 종종 액받이 무녀가 된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욕은 어떤 형태든 쉽게 용인된다. 가상 세계라는 안전한 보호막 속의 절대 악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정해서 때리는 것은 부담이 없고 대체로 재미있으며 중독성을 지닌다. 그것이 폭력의 중독성이다. 만약 대상이 악을 자처할 경우, 즉 욕먹을 짓을 할 경우 욕의 정당성은 쉽게 확보된다. ‘한 놈만 팬다’는 말은 대상에 대한 ‘나’의 절대 권력을 뒷받침한다. 


오히려 소다의 행보와 의도는 TV 드라마처럼 쉽게 읽히는데, 그녀의 ‘죄질의 막중함’을 논하는 남자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디제이는 자고로 음악적 감수성도 뛰어나고, 뭔가 있어 보이는 ‘형님’이 해야 하는데, 왠 ‘어린’ ‘한국’ ‘여자애’가 디제잉 하랬더니 춤이나 추고 되도 않는 백 스핀이나 하며 돈 벌어먹는 게 오빠들은 괘씸한 것일까. 만약 소다를 향한 일관적인 남성들의 분노가 우리 공연 문화의 퀄리티 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사명감의 발로라면, 그래서 마구 ‘나대는’ 소다에게 오빠들이 진중한 마음으로 따끔한 꿀밤을 한 대 때리고 싶은 거라면, 그네들의 공연 문화에 대한 투철하고 자발적인 애정 정신을 독려하며 문화관광부에서 표창장이라도 내려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녀는 어쩌면 본의 아니게 젠더 전복의 아이콘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표현된 통념적 여성성에 대한 남성들의 이중심리를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은 의도적이든, 의도치 않았든 성공적이다. 특정 대상에 대한 극렬한 혐오는 극단적 애정의 뒤틀린 증상일 때가 많다. 소다는 네가티브하고 말초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녀가 절대 악으로 취급되길 원하는 남성들의 집단 심리적 역풍으로 톡톡한 금전적 수혜를 얻었다. 이 글을 쓴 뒤 DJ 소다의 리믹스 트랙을 들어보려 한다. 그녀는 나이키 조던 마니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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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 글 목록 :: midnight madness


사진 출처 : 맥심 코리아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JY6UylCPFB8)


젊고 예쁘며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여성이 DJ 부스 위에 선다. 어디를 봐도 눈에 띄는 외모와 몸매다. 그런데 보통 디제이들과는 조금 다른 행동을 한단다. DJ 덱 앞에서 뜬금없이 한 바퀴 돌고, 자신이 만들었다는 춤을 춘단다. ‘피리춤’이라나, 아무튼 그녀의 시그니처 댄스라고 한다. 그녀의 영상에는 많은 악성 댓글이 달린다. 그녀를 욕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  DJ라면 무엇보다 음악에 집중을 해야 하거늘, 그녀의 부족한 음악성이 문제라고 한다. 사람들을 춤 추게 만들라고 했더니 자기가 춤을 춘단다. 뭔가 한다고는 하는데 쓰레기같고 허접스럽단다. 그것이 사람들이 소다를 욕하는 주된 이유다.


여성 혐오의 극단이 창녀 혐오라면, (창녀 혐오는 남성(주체)-여성(객체)으로 나뉘는 젠더 이분법에서 남성 주체의 성적 욕구 해결 ‘도구’로서, 여성 객체의 주체성이 완전히 상실됐을 때 성립한다. 창녀는 남성의 권력욕과 지배의식에 완전히 굴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DJ 소다는 창녀 혐오의 기믹(gimmick ; 술책)을 전면적으로 사용한다. 음악보다는 비주얼의 섹슈얼함에 집중하며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노출이 심한 옷을 즐긴다 (그녀의 취향이자 콘셉트인 것 같다). PC 화면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비주얼로, 남성 판타지가 내면화된 섹스 어필을 꾀한다. 소다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을 과하게 좋아하거나, 과하게 싫어하게 만든다. 혹은 좋아도 싫어하는 행동을 취하게끔 한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자극적이다.


DJ 소다에 대해 일률적이고 극단적인 욕설이 쏟아지는 현상, 나는 이것을 ‘소다 혐오’라고 부르고 싶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와 미모에 드러난 극단의 여성성에는 열광하면서, 동시에 디제이로서의 실력이 부족하고 미숙해 보이는 행동 패턴에 대해서는 입에 불붙은 듯 화를 내는 사람들의 이중적 반응 때문이다. 주로 실력이, 때로는 외모가 욕을 먹는다. 대체로 둘 다 욕을 먹는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욕을 먹는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 발언들의 발화자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나는 그녀를 혐오하는 다수 남성들의 반응에서, 우습게도 마누라와 여자친구 몰래 유흥업소에 다니는 동시에 ‘성 노동자 여성’이 팁을 달라는 요구에는 거칠게 불응하는 성인 남성들의 이중적 모습이 연상되었다. 음악도 못하는 저런 야하고 천박한 여자 디제이’년’은 관객을 신나게 해주는 것에나 집중하면 될 것을, 혹은 ‘업소’에서 가만히 내가 명령하는 대로만 순응하면 될 것을, 그녀는 굳이 ‘주체적으로’ 커다란 가슴을 흔들어대며 무대의 질을 떨어뜨린다. 한 마디로 예상치 못 한 행동으로 오빠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정말로 그녀가 도덕의 절대 가치에 어긋나거나 법에 저촉되는 죄를 지었다면 사회에서 ‘매장’당하거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게 수순일 텐데 왠걸, 그녀의 몸값은 줄곧 상승하고 있는 모양이다. 근래는 동남아 클럽 시장에 진출했단다. 유명 포털 사이트가 만든 VOD 어플리케이션의 실시간 방송에도 출연했단다. 현실이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공연/행사 산업의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녀를 매장시키고 싶은 사람들의 분노가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설마 겉으로는 무지막지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뒤에서 은밀히 그녀의 영상을 챙겨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그녀를 죽일 듯이 욕을 하던 사람들이?


이쯤 되면 그녀를 욕 하는 동시에 영상을 찾아보는 이들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굳이 추측하자면,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심리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드라마 전개의 극적 구조와 부족한 당위성에 쉽게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단발적인 재미와 말초적 흥미 때문에 그것을 본다. 욕을 하면서도 계속 본다. 뒤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표독스러운 드라마 속 ‘악녀’는 종종 액받이 무녀가 된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욕은 어떤 형태든 쉽게 용인된다. 가상 세계라는 안전한 보호막 속의 절대 악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정해서 때리는 것은 부담이 없고 대체로 재미있으며 중독성을 지닌다. 그것이 폭력의 중독성이다. 만약 대상이 악을 자처할 경우, 즉 욕먹을 짓을 할 경우 욕의 정당성은 쉽게 확보된다. ‘한 놈만 팬다’는 말은 대상에 대한 ‘나’의 절대 권력을 뒷받침한다. 


오히려 소다의 행보와 의도는 TV 드라마처럼 쉽게 읽히는데, 그녀의 ‘죄질의 막중함’을 논하는 남자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디제이는 자고로 음악적 감수성도 뛰어나고, 뭔가 있어 보이는 ‘형님’이 해야 하는데, 왠 ‘어린’ ‘한국’ ‘여자애’가 디제잉 하랬더니 춤이나 추고 되도 않는 백 스핀이나 하며 돈 벌어먹는 게 오빠들은 괘씸한 것일까. 만약 소다를 향한 일관적인 남성들의 분노가 우리 공연 문화의 퀄리티 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사명감의 발로라면, 그래서 마구 ‘나대는’ 소다에게 오빠들이 진중한 마음으로 따끔한 꿀밤을 한 대 때리고 싶은 거라면, 그네들의 공연 문화에 대한 투철하고 자발적인 애정 정신을 독려하며 문화관광부에서 표창장이라도 내려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녀는 어쩌면 본의 아니게 젠더 전복의 아이콘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표현된 통념적 여성성에 대한 남성들의 이중심리를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은 의도적이든, 의도치 않았든 성공적이다. 특정 대상에 대한 극렬한 혐오는 극단적 애정의 뒤틀린 증상일 때가 많다. 소다는 네가티브하고 말초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녀가 절대 악으로 취급되길 원하는 남성들의 집단 심리적 역풍으로 톡톡한 금전적 수혜를 얻었다. 이 글을 쓴 뒤 DJ 소다의 리믹스 트랙을 들어보려 한다. 그녀는 나이키 조던 마니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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