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룹, 혹은 밴드가 팀 워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솔로 활동을 펼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멤버들 간의 두터운 신뢰와 협력, 완급 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따로 또 같이’, 오랜 시간 동안 팀 플레이를 유지중인 킬러스의 멤버별 솔로 활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맨 중의 맨, 브랜든 플라워스의 가족 사랑 솔로 활동에 대한 언급을 하자면, 앞서 프론트 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겠다. 국내 팬들에게 일명 ‘브랜든 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멤버 브랜든 플라워스. 그는 킬러스의 얼굴이자 목소리이며, 송 라이팅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가창력, 쇼맨십 등 보컬리스트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뿐만 아니라 빼어난 비주얼과 스타일 등 스타성으로도 주목 받는 그. 이렇듯 무대 위에선 한없이 빛나던 한 스타의 가족사가 전면적으로 드러난 건 2010년의 어느 날이었다. 2년간 뇌종양으로 투병중이던 브랜든의 모친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킬러스의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 했다.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등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아들이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항상 응원해주었다고 하니, 소중한 버팀목을 잃은 브랜든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 부모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2009년 발표된 킬러스의 싱글 ‘A Dustland Fairytale’에서 드러났다. 두 분의 만남을 신데렐라의 동화에 비유하며, 마치 본인이 직접 본 것처럼 회고하는 브랜든의 목소리는 이러한 사연 때문인지 한층 더 처연하게 들려온다.
메이저 데뷔 이후 70년대 고딕 록, 80년대 신스 팝의 긍정적인 면을 수혈하며 자기만의 색을 구축한 밴드로 평가 받는 밴드, 킬러스. 10월 3일 단독 내한 공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2 The Killers’를 앞두고 그들이 유명 영화 감독 및 스타들과 협업해 온 뮤직 비디오를 감상해보며 이에 대한 흥미로운 비화들을 탐구해보자.
컬트 마니아들의 끈끈한 정, 킬러스와 팀 버튼
얼마 전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9번째 시리즈로 내한한 그로테스크 감성의 대가, 팀 버튼(Tim Burton) 감독과 킬러스의 인연은 유독 돈독하다. 추측하건대, 이들이 친분을 쌓게 된 계기는 고스 록, 컬트 영화에 대한 독특한 취향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는 그들이 함께 작업한 뮤직비디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각자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스타 아티스트와 영화 감독의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컬트 마니아들의 구미를 자극할만한 요소들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점이 보기 좋다.
The Killers – Bones
팀 버튼과 킬러스의 첫 작업은 2006년 2번째 정규 음반 <Sam’s Town>의 수록곡 ‘Bones’로, 뮤직비디오에는 사랑에 빠진 해골 형상의 남녀가 등장한다. 이는 마치 팀 버튼의 영화 <유령 신부>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이 배역은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 모델 데본 아오키와 미국 드라마 <90210>의 배우 마이클 스티거가 맡았다. 이 비디오로 팀 버튼은 2007년 NME Awards 베스트 비디오 상 수상의 영예를 안는다.
The Killers – Here With Me
이에 박차를 가해 두 번째 협업은 명작 영화 <가위 손>의 여주인공, 위노나 라이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Here With Me’로 이어진다. 이는 킬러스의 가장 최근 앨범 <Battle Born>에 수록된 러브 발라드. 팀 버튼이 1935년 제작된 공포 영화 ‘Mad Love’에 영감을 받았다는 이 비디오는 인간과 마네킹을 오가는 위노나 라이더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이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이 만든 피규어와 사랑에 빠진 조각가의 이야기를 다룬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연달아 팀 버튼과 두 작품을 함께 한 킬러스는 2012년 영화 <다크 섀도우>의 엔딩 송을 부르며 상부상조의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세션맨’들로 구성된 밴드가 그들만의 음악에 집중하게 만드는 건 보다 많은 노력을 요한다. 연주는 월등히 뛰어날 수 있지만, 밴드로서의 모양새와 보컬의 역량 등 그 외로 충족시켜야 할 부분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승환, 이현우, JK 김동욱, 빅마마 등의 앨범과 공중파 방송, 수많은 공연 연주자로 활약해 온 세렝게티. 많은 세션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탄탄한 연주력이 일등 보험이 되어주는 만큼, 세렝게티만의 음악색에 대한 기대치 또한 올라간다. 그들은 영리하게도 아프로(Afro)라는 특색있는 장르를 선택해 그 의구심을 감소시킨다. 비슷한 예로 윈디 시티, 킹스턴 루디스카, 넘버원 코리안 등이 레게와 스카 사운드를 추구하며 인지도를 얻었다. 허나 대중적 질감의 아프로 사운드를 선보인 밴드는 많지 않았다. 가요와 인디를 경계없이 오가며 활동해 온 세렝게티의 스펙트럼은 ‘아프로’라는 음악의 마니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유리하다. [Colors Of Love]는 세렝게티의 음악적 질주가 정점에 이른 앨범이다. 슴슴한 어쿠스틱과 강렬한 연주의 완급 조절은 앨범의 장점이자 밴드의 강점이다. 과한 시도를 멀리하는 베이시스트 유정균의 보컬은 부담없이 곡을 리드한다. 트랙마다 날 것처럼 살아있는 연주는 최상급이다. 눈에 띄는 점은 보다 늘어난 외부 음악가들의 지원이다. 그 자체로 훌륭한 사랑찬가 ‘그대도 날’은 킹스턴 루디스카의 참여가 플러스 작용을 했다.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참여한 ‘나는 도망한다’는 세렝게티가 거의 처음 시도하는 록 넘버고, 랄라스윗의 김현아와 함께 한 ‘모든 것은 꿈처럼’ 역시 유일한 혼성 듀엣 곡이다. 쉽지 않은 콘셉트의 음악으로 무려 세 장의 앨범을 흔들림없이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한 밴드의 역량이다. 그들이 처음 공표했던 아프로 사운드를 넘어, 한국 정통 록 같은 새로운 장르의 시도 또한 충분히 새롭고 고무적이다. 다양한 음악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세렝게티의 [Colors Of Love]는 그 자체로 건강한 즐거움을 주는 음반이다.
또 다른, 50 ‘아프로 사운드’라는 음악적 슬로건은 밴드의 콘셉트를 명확히 해주는 반면 한 장르에 매몰될 수 있다는 위험 요소를 동반한다. 물론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록, 사이키델릭, 어쿠스틱 등의 다양한 시도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앞으로도 밴드에게 다양한 음악적 소스의 활용은 지속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이러한 놀이에 질리지 않는 것이 음악가와 청자 모두가 즐거워지는 길일 것이다.
좋아할, 50 ‘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미국과 유럽을 떠올린다. 남반구의 호주는 의외의 음악적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아직 ‘유학생이 많은 나라’ 정도 밖에 인식되지 못하는 듯 하다. 시드니 출신의 일렉트로닉 팝 듀오 피나우(Pnau)는 90년대 중반에 만나 인디 신을 중심으로 잔뼈 굵은 활동을 펼쳐왔다. 최근 그들의 팬을 자처한 엘튼 존(Elton John)의 레이블과 함께 하며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이는 그 동안 소기의 성과가 존재한 덕이다. 많은 음악가들이 성장 과정에서 록이나 재즈, 클래식을 듣고 자라는 반면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하우스와 트랜스를 접했다. 그런 배경 덕분에 피나우의 음악은 어쿠스틱 악기와 댄스 비트가 과감히 합치된다. 통산 네 번째 정규작 [Soft Universe]는 그룹의 전성기에 발표된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키 트랙인 ‘Solid Ground’는 쓸쓸한 기타 사운드를 전면에 배치하며 80년대 뉴 웨이브의 정서를 녹여낸다. ‘Unite Us’, ‘The Truth’를 관통하는 청량감과 ‘Twist of Fate’의 긍정적 사운드는 피나우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다. 당돌한 드럼 비트의 ‘Epic Fail’과 ‘Better Way’의 복고풍 멜로디, 페스티벌 엔딩송으로 제격일 듯한 ‘Something Special’까지 각각의 멜로디는 신선하고도 이국적이다. 80년대 록 스타의 풍모와 근래의 일렉트로닉 비트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점은 청음의 폭을 넓힌다. 사실 ‘춤출 수 있는 댄스 음악’이라는 시도는 많았지만 이들이 선사하는 이질감은 흔치 않았다. 두 그룹을 동시대에 성공 선상에 올려놓은 팀의 수장, 닉 리틀모어의 재능은 분명 빛을 발한다. 그가 피나우 이후 결성한 듀오 엠파이어 오브 더 선(Empire of the Sun)은 보다 댄스 클럽 지향의 음악으로 선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좀 더 강렬하고 테크니컬한 음악을 듣고 싶다면 체크해보자. 닉 리틀모어가 직접 프로듀스한 로비 윌리엄스, 그루브 아마다, 미카의 곡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또 다른, 50 취향이란 때론 물과 기름 같아서 쉽게 섞일 수 없는 법. 혹자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을 넘나드는 그들의 시도가 마냥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닉 리틀모어가 두 집 살림 중인 피나우와 엠파이어 오브 선(Empire of the Sun)의 음악적 차이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품는 청자도 더러 있을 것 같다. 최근 들어 다소 강렬해진 건 사실이지만, 엠파이어 오브 더 선의 곡 중에도 잔잔한 히트곡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나우를 그들의 ‘친정’이라고 하기엔, 전자 또한 만만찮은 상승세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좋아할, 50 게리스 아일(Gehrith Isle)이라는 이름으로 버벌 진트, 윤석철 트리오, 스윙스와 함께 한 랩퍼 김아일(Qim Isle). 빈지노의 ‘Boogie On & On’을 작곡하고, ‘Girlslike’라는 곡으로 그와 연을 맺은 작곡가 이다흰은 신예 프로듀서 신세하와 김아일의 만남을 주선한다. 흑인 음악을 듣기 시작해 마이너 일렉트로닉까지 섭렵한 신세하의 취향은 김아일을 단번에 사로 잡았고, 두 사람의 화학 작용은 [Boylife In 12``]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때문에 본 작은 김아일만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김아일과 신세하의 합작에 가깝다. 앨범에서 김아일은 음악부터 그 외적인 것까지 기존 힙합의 문법에서 상당 부분 벗어난다. 프로듀싱의 중심에 선 신세하는 테크노, 디스코, 쥬크(Juke) 등 다채로운 댄스 음악의 문법을 제시한다. 김아일 또한 이러한 시도를 즐기는 듯 하다. 때문에 앨범은 ‘힙합 베이스의 일렉트로닉’으로 들리지, 결코 힙합의 문법이 앞서지 않는다. 많은 힙합 음악에서 ‘여성’의 묘사가 빠지지 않듯, 본 작도 다양한 주제로 그것을 이야기한다. 둘로 나눈다면 그녀들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욕망과 애증이다. 첫 트랙 'V*$*V'는 김아일이 존경을 담았다는 여성 지인들의 실명이 별다른 서사없이 나열되는데, 그 자체로 낯설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이어지는 몽롱한 분위기의 ‘사과를 깨무는’과 ‘Puff In Groove’ 는 의뭉스럽고 에로틱하다. 반면에 ‘Theo’같은 곡은 과격한 성적 본능이 별다른 거름망없이 표출되는데, 이러한 가사 표현에 호불호가 크게 갈릴지도 모르겠다. ‘해변에서’나 ‘제 주 도’, ‘Girlslike’에서 보이는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상반된, 굉장히 저돌적인(?) 자아가 표출되기 때문이다. 재기발랄한 가사와 의도된 듯 뭉개진 발음, 수시로 예상을 뒤엎는 박자들. 여러모로 [Boylife In 12``]는 재밋거리가 많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젊은 음악가들의 출발점을 끊은 앨범이라는 점에서 추천한다. 온라인에 범람하는 기존 힙합, 댄스 음악을 듣다가 접한다면 눈과 귀가 번쩍 뜨일, 낯선 사운드의 집합체다.
또 다른, 50 장르로 양분하기 힘든 앨범이다. 특히 힙합의 카테고리 안에서 읽어내기 어려운 음악이다. 어떤 가사는 무척 난해한 실험시처럼 들리기도 해,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허나 랩퍼로서의 자아를 내세우기 보단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묻어가는 김아일의 발성이, 본 작에서 그가 택한 표현 방식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원론적인 조건을 따지는 건 이 앨범을 듣는 재미를 놓치는 걸지도 모른다.
좋아할, 50 윤상에게 선택 받은 천재, 류이치 사카모토가 주최한 작곡 그랑프리 우승자, 그리고 김동률, 윤건, 존 박 등 수많은 음악가의 앨범 프로듀서까지. 이렇듯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아스트로 비츠(Astro Bits, 프로듀서명 bk!)는 음악 마니아들에게 무엇보다도 단 하나의 수식어로 통했다. 그것은 ‘국내 최초의 애시드 재즈(Acid Jazz) 전도사’였다. 본명 김범수로 발표한 앨범 [Guardian Angel (수호천사)]는 ‘시대를 앞서간 앨범’이라는 칭송을 받았고 그로부터 10년 후 공개한 정규 앨범 [Astro Bits]는 재즈, 보사노바, 테크노 등 다양한 들을 거리를 제공하며 마니아들의 귀를 자극시켰다. 이름난 마스터링 엔지니어로서 소리에 민감한 그인 만큼, 다양한 사운드로 청자들을 사로 잡은 아스트로 비츠의 음악은 그만큼 참신했다. 그로부터 각종 싱글 발매와 협업 등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근 6년 만에 발매된 [Bits of Universe] 는 새삼 반가운 정규작이다. 눈에 띄는 건 정인, 양파, 리쌍 등 그와 교류했던 음악가들의 참여 비중이 늘었다는 것, 동시에 새로운 대중의 기호를 찾아가려는 시도가 곳곳에 묻어난다는 점이다. 한 편, ‘보고 싶어’나 ‘얘기, 얘기’같은 곡은 아스트로 비츠의 건재한 사운드 메이킹 능력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는 특히 지난 [Astro Bits] 앨범을 좋게 들었던 팬들에게는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좋은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집에 오는 길’은 다소 식상해질 뻔한 R&B 보컬이 재즈 풍 멜로디 덕에 한결 부드러운 인상을 주며, ‘별의 기억’은 우주의 법칙에 대한 순수한 고찰이 가사로써 증명되는 곡이다. [Bits of Universe]는 무엇보다도 아스트로 비츠의 음악적 근황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앨범이다. 대중 음악계에서는 프로듀서 bk!로 보다 유명하지만, 중요한 건 아스트로 비츠와 음악 프로듀서 bk!의 영역은 별개라는 사실이다. 애당초 그의 음악에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건 유명세를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또 다른, 50 새로운 시도란 늘 위험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지난 앨범들의 섬세한 느낌에 감명 받았던 청자들을 배려한다면 ‘어디선가’처럼 무대 지향의 일렉트로 하우스는 리믹스 트랙이 모인 뒷 순서가 어울리지 않았을까. 또한 외부 보컬이 부른 곡들 사이에도 묘한 불균등이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피처링 보컬의 섭외가 좀 더 신중해야 했음을 시사한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정인, 양파, 리쌍보다도 그의 노래를 더 잘 소화해내는 건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익숙한 캐스커다. 물론 그의 음악적 공력을 생각했을 때 다양한 음악가들을 영입하여 앨범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건 좋은 시도였다. 그러나 그 방법이 모든 아티스트에게 통하는 지는 미지수다. 특히나 이렇게 아티스트의 개성이 뚜렷한 음악일 경우에 이는 더욱 조심스러운 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테테(Tete)의 음악을 듣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두 밴드가 있다. 때론 퇴폐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로 인디 신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던 네스티요나(Nastyona), 그리고 뉴 웨이브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댄스와 록 음악을 독특하게 접목시켰던 텔레파시(Telepathy). 그는 이렇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두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했다. 이후 슈퍼스타K 출신의 투개월이 솔로 데뷔곡 ‘Romantico’를 리메이크함과 동시에, 테테라는 이름도 대중들에게 좀 더 익숙해졌다. 그로부터 꾸준히 발표한 두 장의 솔로 앨범과 싱글, 외부 활동까지 합쳐져 그의 이력은 보다 풍성해졌다. 봄의 시작과 함께 발표된 신보 [Love & Relax]는 라틴 사운드와 어쿠스틱이 어우러진 다섯 곡의 EP다. 앨범은 이국적인 기타 사운드의 ‘춤추는 봄’으로 시작해 마이너 멜로디가 인상적인 ‘Rainy’로 이어진다. 다음 곡 ‘Sentimental’은 오랫동안 잔영을 남기는 후렴구와 ‘거리 위로 내리는 가로등에도 춤을 춘다’같은 시적인 가사가 백미를 이룬다. 순수한 어쿠스틱의 ‘Love & Relax’는 곡 순서 면에서 다소 겉도는 느낌이 있지만, ‘Goodbye Planet’에서 촉촉한 감성의 결은 되살아난다. 테테의 음악에서 재미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강한 느낌의 밴드에서 활동해왔던 것에 반해, 그 대척점으로 볼 수 있는 어쿠스틱 장르의 프로듀싱이 원활하게 이뤄져 왔다는 점이다. 더불어 솔로 활동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라틴 사운드와 90년대 가요 감성의 눈에 띄는 발현은 그의 음악 색을 좀 더 견고하게 해준다. 싱어 송 라이터의 어쿠스틱 앨범이라고 해서 반드시 달콤하고 풋풋한 사랑만을 노래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쓸쓸하고 담담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본 EP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의 성실한 송 라이팅 덕분일 것이다. 봄에는 ‘벚꽃 엔딩’같은 순간도 있지만 ‘Rainy’같은 때도 오는 법이다. 맑고 화창한 날씨보다는, 비 내리고 먼지 낀 봄에 어울리는 앨범이다.
또 다른, 50 EP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5곡이라는 수록곡 수는 다소 적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성 넘치는 송 라이팅과 마이너 곡조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한 두 곡만 더 수록되었더라면 보다 많은 것을 가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타이틀로 내세운 ‘춤추는 봄’과 어쿠스틱 선율이 강조된 ‘Love & Relax’같은 곡에서는 다른 트랙에 비해 테테만의 개성이 덜 한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이는 청자에게는 호불호로 나뉠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마이클 데이비드와 타일러 블레이크. 폴 사이먼부터 크라프트베르크까지 같은 뮤지션에 열광하던 두 소년은 성인이 되어서도 끈끈한 우정을 이어간다. 마이클은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타일러는 버클리 음악 학교에 진학하며 꿈을 다진 것. 세계적인 레코딩 스튜디오가 가득하고 따뜻한 기후가 매력적인 도시인 미국 LA. 음악적 역량을 펼치기엔 최고의 환경 속에서 2009년, 일렉트로닉 듀오 클래식스(Classixx)는 결성된다. 그들은 프랑스 레이블 키츠네(Kitsune)를 통해 첫 리믹스 트랙으로 피닉스(Phoenix)의 'Lisztomania'를 발표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DJ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며 팅팅스(The Ting Tings), 가십(Gossip), 패션 핏(Passion Pit) 등 유명 밴드들의 러브 콜을 받는다. 같은 해 발표한 업템포의 데뷔 싱글 "I'll Get You"는 '프로듀서 클래식스'의 존재감을 크게 알린 곡이었다. 장기간의 투어 일정 때문인지 첫 앨범 [Hanging Gardens]는 데뷔 싱글 발매 후 4년이 지난 2013년이 되어서야 발매되었다. 앨범과 동명 타이틀의 'Hanging Gardens'는 바닷가의 나른함을 연상시키는 인트로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시작된다. "All You're Waiting For"은 엘시디 사운드시스템(LCD Soundsystem)과 함께 한 보컬 낸시 왱(Nancy Whang)이 참여해 선명한 후크의 디스코 팝을 완성한다. 'Holding On'에 쓰인 희망찬 기타 리프와 보컬 샘플링은 약간은 노골적인(?) 다프트 펑크(Daft Punk) 오마쥬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드림 팝 싱어 송 라이터 액티브 차일드(Active Child)의 'Long Lost'를 거쳐 'A Stranger Love'의 신선한 분위기와 보컬 속에 자연스레 해소된다. 'Borderline'의 싱어로 선택돤 키세스(Kisses)의 멤버 제스 키벨(Jesse Kivel)과의 조합 또한 감상 트랙으로써 훌륭하다. 80년대 디스코에 대한 향수와 유럽 댄스 음악의 정서, 이에 훌륭한 보컬리스트들의 합세로 듣기 좋은 'LA형 뉴-디스코(New Disco)'가 탄생했다. 가장 듣기 좋은 점은 이들이 2009년의 'I'll Get You'에서 멈추지 않고 다양한 사운드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일 것이다. 기존의 곡을 선별하여 대중에게 들려주는 DJ의 영역을 넘어, 앨범에는 4년간 고민해 온 프로듀서 클래식스의 색깔이 오롯이 담겨있다. 댄스 음악을 산뜻한 감상의 영역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 다른, 50 보컬 곡들의 흡인력이 크다는 사실은 이 앨범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현역에서 활동중인 외부 음악가의 참여는 앨범 색을 다채롭게 하며 각 트랙을 돋보이게 해준다. 한 편 앨범에서 기억에 남는 곡 대부분이 보컬 곡이라는 점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때문에 앞으로 이들에게 외부에 기대지 않는 비보컬곡의 경쟁력 강화는 매우 중요할 것이다. 연주곡이 보컬 트랙에 묻히지 않고 대등한 트랙으로써 들려오는 것. 이것을 차기작에서 이룬다면 다음 앨범은 더욱 듣기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좋아할, 50 ‘레트로 소울’ 싱어 메이어 호손(Mayer Hawthorne)의 두 번째 메이저 앨범이다. 모타운(Motown) 사운드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시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R&B, 훵크, 재즈 등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60년대 정통 소울 가수들을 포함하여, 제이딜라(J Dilla)같은 힙합 전설의 영향까지 언급할 정도로 청음의 폭이 넓은 건 그 덕분이다. 싱어 송 라이팅뿐 아니라 DJ, 랩퍼, 프로듀서 등 다양한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는 호손은, 지난 앨범에서 모든 곡을 총괄하며 프로듀서로의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그러나 이번 작품 [Where Does This Door Go]는 보컬과 작곡가로서의 역할에 보다 집중한다. 다채로운 앨범 색을 내는 데 힘쓰기 위해 잭 스플래시(Jack Splash) 등 전보다 많은 외부 음악가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Back Seat Lover’는 쉽고 강렬한 후렴구로 멜로디의 순수함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The Innocent’, ‘Allie Jones’ 또한 곡마다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다음 트랙을 기대하게 만든다. 피아노가 시원하게 터져 나오는 ‘The Only One’과 ‘Corsican Rose’는 트랙 자체만으로 충분한 매력을 지닌다. ‘Her Favorite Song’은 싱글컷 되어 좋은 반응을 얻은 사실을 입증하듯 귓가에 오래 남는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프로듀싱한 ‘Wine Glass Woman’, ‘Reach Out Richard’ 등은 프로듀서의 색이 많이 드러나는 만큼 다른 곡과 어우러지며 앨범의 변화를 드러내는데 협조한다. 또한 ‘Crime’은 힙합 신의 슈퍼 스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랩퍼로 참여하며 호손의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적잖은 몫을 해낸다. 결국 앨범은 소울을 벗어나 그 자체로 빼어난 팝 앨범이 된다. ‘레트로 소울’, ‘블루 아이드 소울’ 이라는 구태의연한 수식어를 벗어나 대범한 시도들로 귀가 즐거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멀티 아티스트가 행한 옳은 변신의 예로 회자될 만한 앨범이다.
또 다른, 50 팝으로는 흠결을 찾기 어렵지만 소울이라기에는 아리송하다. 그만큼 기존 알앤비, 소울 음악이 익숙한 청자들에게는 ‘변종 소울’을 넘어, 동시대 음악의 여러 영역을 건드리는 이 앨범이 낯설게 느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급변하는 음악 시장 속에서 변화는 불가피한 법. 자신의 끼와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의 음악 세계에 되도록 편견 없이 몰입 되어보는 것이 좋겠다. 좋은 음악 앞에선 장르 구분이 없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좋아할, 50 프롬(Fromm)은 2012년부터 홍대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싱어 송 라이터다. 부산에서 상경해 피터팬 컴플렉스, 테테(Tete) 등의 음악가와 공동 작업을 했으며 지산 록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등에도 이름을 올렸다. 데뷔 직후로 큰 무대에 섰다는 건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들려줄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규 앨범 [Arrival]이 발매되었다. 우선 그녀가 모든 곡의 작편곡과 프로듀싱에 참여한 점이 눈에 띈다. 그 흔한 피처링 하나 없다. 자칫 갑갑한 포크 앨범이 될 뻔한 위기를 여유롭게 대처하는 건 다양하게 시도된 변주다. 적시에 등장하는 악기들이 영롱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자유로운 멜로디가 지루함을 상쇄한다. 첫 곡 ‘도착’의 이국적인 느낌은 앨범이 단순한 어쿠스틱 이상임을 예고한다. 환상동화 같은 ‘Merry Go Round’의 깊이 앞에 ‘마음셔틀금지’, ‘좋아해’는 오히려 풋풋해진다. 앨범 수록 여부를 고민했다는 ‘달, 말하다’나 ‘너와나의’는 담백한 구성으로 서정성을 확보한다. 심지어 ‘불꽃놀이’는 도입부부터 록이다. 이렇듯 곡마다 분위기 편차가 존재하지만 모두를 자연스레 아우르는 건 특유의 음색이다. 굳이 장르로 묶자면 포크나 챔버 팝의 어딘가에 위치할 앨범이다. 10곡의 감성이 어우러져 잔잔한 울림을 이끌어낸다. 밋밋한 보컬 곡이 지루한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깔끔하고 세련된 인디 팝의 감성이다.
또 다른, 50 여성 싱어 송 라이터라는 이유로 그녀에게도 ‘홍대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홍대 여신의 어원은 ‘홍대의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의 줄임말 ‘홍대 여싱’이라고 한다.) 그러한 별명은 양날의 검 같아서 진입 장벽을 낮추기도, 높이기도 한다. 홍대 여신이라는 말이 선입견으로 작용한다면 그와는 거리가 먼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홍대 여신 보다는 인디 팝 여신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만큼 뻔하지 않다는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