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팀명만 보고 유관순 열사의 그것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들에게 다소 무리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폄하하는 얘기가 아니라, 펑퍼짐한 아줌마 치마를 입히기엔 이들의 잘빠진 몸매가 아깝다는 얘기다. 재일교포 2세에게 한국산 김치의 우월함을 열토하고, 3개국의 피를 물려받은 재독교포에게 족발이 아이스바인(독일식 족발)보다 맛있다고 웅변할지언정, 그들은 오리진(origin)은 한국 본토의 감수성을 이해할 수 없다. 외국인이 조지훈의 승무에 등장하는 '나빌레라'라는 언어유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이렇게 애초에 기대치를 줄이고 듣는다면, 검정치마의 1집 [201]에 담긴 다국성(多國性)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대할 수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국적, 다출처의 양질의 음악이 모인 검정치마의 1집 은 분명 그 자체로 '백화점'이다.

다국적, 다장르로 마블링된 인디록
'한국 노래가 아닌 것 같아'라는게 이들의 음악을 접한 이들의 첫번째 반응이다. '강아지'나 '아방가르드 킴'의 도입부를 들으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세네팀 이상의 영미 밴드들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해줘' ,'Antifreeze'의 신디사이저의 '뿅뿅'거리는 전자음과 '구남과여라딩스텔라'류의 처연한 혼잣말에서는 이제 막 첫앨범을 발매한 신인 밴드의 로파이한 풋풋함이 묻어난다. 이렇게 검정치마는 내공없이는 절대 쉽게 넘을 수 없는 홍대와 뉴욕이라는 먼 거리를 구렁이 담 넘듯 드나든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것은 밴드 멤버들의 취향과 출신이다. 검정치마의 작곡/작사를 맡고 있는 팀의 중추 보컬 조휴일은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하드코어 밴드 '일진회'출신이고 드러머는 '라르크 엔 시엘(L'Arc~en~Ciel')의 유키히로와 뮤즈(Muse)의 도미닉을 좋아한단다. 아니, 뉴욕도 모자라 이제 일본까지! 라고 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어쨌든 검정치마는 우리에게 햄치즈 샌드위치와 김치를 같이 먹어도 맛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국 록신에서의 이들의 등장은 마치 아무 생각없이 한 판의 달걀을 하나하나 깨먹다가 오리알을 발견한 것마냥 갑작스러웠다. 스트록스(the Strokes)와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악틱 멍키스(Arctic Monkeys)등이 2000년 중후반의 영미권 록신을 뒤흔든 것에 비해 국내의 개러지 리바이벌 붐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검정치마, 파블로프 등으로 이어지는 섹시한 록의 네이밍을 이들의 레이블 명을 딴 '루비살-록(RubiSa-Rock)'이라고 불러도 그다지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안정된 프로필과 바이오그래피가 나온 후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들어지는, 개러지록 혹은 인디록이라는 장롱 안에 넣기엔 억울해서 자꾸만 쇼윈도에 걸게되는 '검정치마'다.




머릿 속이 온통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점철되었던 그 때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점점 동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던 요즘이었다. 가방에는 아이팟 터치 2세대나 아이스크림 폰을 담고, 한 손으론 유니클로(Uniqro)나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의 쇼핑백을 메고서 남자친구와 신사동의 '핫 스폿'이라는 곳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헤어지는 식의, 루트가 뻔한 데이트 코스들. (숨이 차다) 그 속에서 '저런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며 '무심한듯 시크한척'하고 싶었던 나는 '읽어야지'라고 생각만 했던 김사과의 장편소설 <미나>와 만났다. 아니, 재회했다.

학교를 다닐 때 '이 책이 아니면 글쓰는 사람이 아니죠'라는 말에 냉큼 3년치를 신청했던 한 문예 계간지 속에서 김사과라는 작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나로 하여금 대학교 3학년이라는 신분으로 데뷔한 소설가 한유주와 더불어 '그야말로 엄친딸이구나'라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주는 작가였다. 짧게 인터뷰한 기사만 봐도 그녀는 외고를 자퇴하고서 검정고시를 통해 천재 아니면 또라이만 모인다는 한예종에 간 데다가 '영이'라는 파괴적인 소설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어마어마하게 길고 화려한 수식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데뷔작 <영이>를 만났을 때도 나는 쉽게 소설의 호불호를 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등장은 한 마디로 '교란'이었다. 

소설 속에는 소위 엄친딸이라 불리는 여고생 '미나'와 그녀만큼 표면적으로는 잘난 여고생이나 미나로 인해 태생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수정'이란 두 인물이 등장한다. 친구의 자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다니게 된 미나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창 사춘기인 수정의 관계 또한, 소설 전체의 명징하지 않은 메세지만큼이나 묘하다. 애증을 넘어서, 질투를 넘어서, 설익은 분노를 넘어서 마치 휴화산이 폭발하듯 마무리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농밀한 내러티브는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로 하여금 개운함보다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교복을 입던 시절의 기억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추억이다. 나부터가 몇 년 전에는 소설 속의 소녀들처럼 길거리에서 파는 스타킹마냥 흔하게 널린 여고생떼 중 하나였기 때문일까. 고3 당시, 수능을 보고나서 한 학교는 보기좋게 떨어지고, 20점 하향한 학교도 어이없게 떨어지고, 희망을 갖고 있던 마지막 학교에서 예비번호 한 자리 수를 받는 3연패를 경험한 나. 나 또한 제도의 무수한 피해자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의 '3연패'는 나라는 인간의 20대 초반을 지배하는 피해망상을 고밀도로 증폭시키는 사건의 발단이었던 듯 하다. 재수를 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흘려들은 채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수험생이란 끔찍한 직업을 다시는 갖고 싶지 않았으며, 집안 형편 또한 재수를 할 처지가 못되었다) 단지 전공만 보고서 이름 없는 전문 대학의 추가 모집 원서를 집어넣었다. 학교 생활은 밋밋하단 것 빼고는 그닥 나쁘지 않았다. 나름대로 칭찬도 받고 상도 타며 잘 다녔다. 물론 남들처럼 적당 농도 이상의 재미가 가미된 대학 생활은 즐길 수 없었지만 말이다. (MT도 한 번도 가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남자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했던 지독한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 도서관에 가거나 음악을 들으며 서울의 이 곳 저 곳을 홀로 탐방하고 다니는 게 당시 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용기를 내서 음악 동호회로 몇몇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시를 쓰게 되었고 소설을 가끔씩이라도 찾아읽었던 게 그나마 그 때 잘한 거라면 잘한 일일까. 아무튼 '대학생의 특혜'라는 것을 여유롭게 누리기에, 내 캠퍼스 라이프는 너무 춥고 어두웠으며 가난했다.)

그렇게 내 10대와 20대의 길목은 피해 망상만 가득한,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그 피해의식은 지금도 미처 씻어내지못한 라면 찌꺼기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나.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나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미나와 수정을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리멸렬한 과거와 작별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어쩌면 적지 않게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수능 시험을 보기 전날, 나는 새벽 2시까지 끙끙거리며 울었다. 요즘도 자주 고등학생이 되거나,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푸는 꿈을 꾸는 나에겐 씻을 수 없는 그 때 이후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나는 10대 시절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고 실패도 하고 상처도 받았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내가 밟고 지나온 돌들이 모두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부터가 내가 이제 어느 정도는 철이 들었다는 의미였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나에겐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기준이 없다. 예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는 2008년의 나는 그저 <미나>의 책장을 덮으며 회색 시험지처럼 쓸쓸했던 모노톤의 추억들을 상기할 뿐이다. 지금도 인공 닭장에서는 수많은 무정란들이 태어난다.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알들의 숨구멍은 외부의 힘에 의해 철저히 막혀있다.

하이퍼리얼리티를 표방한듯한 서사와 지적 사고가 거세된 듯한 소녀들의 구어체가 짬뽕되어 낯설은 이야기로 탄생한 <미나>. 책 속에서의 미나와 수정은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잠바와 아디다스 가방처럼 유행조차 재단된 시대를 살아가는 소년소녀를 표방한다. 80년대에 태어난 독자들이 두 소녀들을 통해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결코 낯설지 않듯, 미나가 수정을 칼로 난자하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소설의 전체 흐름을 따져본다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비상식이 상식보다 더 상식적인 것으로 통하는 세상 아니던가. 미나와 수정이 당한 세상의 폭리에 비하면 수정의 손을 거친 미나의 죽음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제도의 시스템 내에서 영리하게 적응하나, 끝까지 지독한 기계로 남았던 미나가 천진할 정도로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서, 작가는 수정의 칼자루를 통해 세상을 조소하는 것이다. 이는 어른들이 '철없는 고딩들의 치기와 피해의식 과잉'이라고 치부하고 싶어하는, 더럽고 추잡한 세상의 단면 자체를 보여준다.

작가의 문체는 충분히 쿨하지만 쿨한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어를 가지고 노는 장난만 배운 일부 풋내기 작가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그녀는 찌고 쪄서 충분히 익혀낸 문장으로 세상의 목을 영리하지만 안전하게 비튼다. 사색이 사치가 되고 맹목적인 소비가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현재, 폐부를 찌르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파괴적이고도 젠틀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독자가 느껴야하는, 혹은 해야 하는 일은 미나와 수정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토록 충격적인 엔딩은 독자가 감상평을 남길 틈마저 일찌감치 거세해버리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이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나>의 결론엔 일말의 동정심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쓸쓸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GOOD

1. 지금-오늘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영상미 넘치는 필력.

2. 세상의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수정의 심정에 대한 파워풀한 서사.

BAD

1. 수정과 친구-연인 사이의 관계이자 미나의 친오빠인 민호에겐 뚜렷한 역할이 없다. 수정이 애증하던 엄친딸을 칼로 죽였다는 걸 이해하고 나면, 자기 친여동생 죽은 걸 보는 10대 소년의 태도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친오빠 맞아?

2. U2나 라디오헤드, 피오나 애플, 뷔욕 등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형과 누나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 듣는 소녀들의 대화 치고는 끝없이 가벼운 '수정'과 '미나'의 수다들. 차라리 빅뱅이나 원더걸스라고 하는게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3. 어린 애들이 담배를 너무 자주 태우는구나. 어차피 속담배는 아니겠지만.

호감, 비호감의 차원을 떠나 특정 인물의 실명을 곡 타이틀로 지정하는 뮤지션들의 의도는 뭘까?
사교계의 아이콘 '셀러브리티'라는 이름 하나를 내걸음으로써 
말을 조금 아끼려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가사전달을 떠나서
곡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조금 더 쉽게 하려는
그런 게 아닐까? 라고 추측해보고 싶은거다.

CSS - Meeting  Paris Hilton

엔지니언가 프로듀서가 바뀌어서 그런지 2집 [Donkey]가 많이 말랑했으나
CSS의 1집은 딱 적절하게 넘쳤다. 표면장력을 넘어선 맥주라도 어느 정도 핥아먹을 수 있는
기준이 있는데, 비유하자면 CSS 1집은 거품이 손잡이 직전까지 흘러내린 정도였달까.
전자가 너무 좋아서였는지 2집은 솔직히 김 좀 빠져서 밍밍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CSS는 이 곡으로 직접 패리스 힐튼도 만났다대.
(러브폭스랑 둘이 서있으니까 소인국과 대인국의 만남같았음;) 

The Teenagers - Starlett Johansson

슈게이징과 클럽록신 사이에서 적절히 줄타기를 해온 틴에이져쓰!
스칼렛 요한슨은 아니고 스'탈'렛 요한슨이다.
센스있어.

Maxmilian Hecker - Kate Moss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날 방에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밝은 날
햇살 받으며 들으면 지상낙원이 되는 곡.
단순한 피아노 선율이야말로 심프리 원더풀임을 보여주는 수작!
>지금은 내한공연중. 

Harvard - Look Like Chloe (Sevigny)

현재 AVALON이라는 이름의 클럽록 밴드로 활동중인 하바드.
Look Like Chloe의 정체는 다름 아닌 쉬크 결정체, 끌로에 셰비니였다고 한다.
노래가 없으니 이거라도;;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외로 따뜻한 남자, breakbot  (2) 2009.01.30
20090125 Digitalism in Korea  (2) 2009.01.27
매쉬업 앓이  (0) 2008.10.29
SebastiAn REMIXS 발매(9월), KMC 6탄 발매(10월)  (0) 2008.10.15
귀가 즐거운 한가위 뉴스  (0) 2008.09.13

싱크가 안맞으면 비루해질 가능성이 매우 큰 매쉬업.
감탄스럽고 놀라운 것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플로 도배된 것도 많다.
아래는 잘 알려져있고 그나마 쿵짝이 잘맞는 노래들;
더 찾아보고 싶으나 피곤함 (요즘 평균 취침 시간 11시)


Britney Spears vs Daft Punk - Gimme More vs HBFS


CSS vs Cut /// Copy - Alala On The Ice


Fergie vs Prodigy - Smack My Fergie Up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본좌는 지난 여름을 휩쓸었던 이것이 아닐까? 
 
빅뱅 마지막 인사 vs 손담비 Bad Boy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0125 Digitalism in Korea  (2) 2009.01.27
특정 언니를 앓는 밴드맨들  (4) 2008.11.08
SebastiAn REMIXS 발매(9월), KMC 6탄 발매(10월)  (0) 2008.10.15
귀가 즐거운 한가위 뉴스  (0) 2008.09.13
autoKratz 뉴 앨범!!  (0) 2008.08.20


올해 신인 아이돌 그룹 중 눈에 띄는 팀은 SM의 샤이니, JYP의 2AM과 2PM, 엠넷미디어의 다비치 등으로 비교적 쉽게 요약된다. 이 중 일명 '컨템퍼러리 밴드'('Comtemporary'라는 단어는 동시대의 트렌드를 이끌고 해답을 제시하겠다는 이들의 포부가 담겨있다고 기획사와 측은 설명한다)라는 이름을 들고 나온 샤이니(SHINee : '빛'을 의미하는 'shine'라는 어미에 '더블e'가 붙어 '빛을 받는 아이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기획사 측은 설명한다)는 올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보이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지난 24일 선공개한 신곡 '아.미.고.'(Amigo:스페인어로 친구, 여기서는 '아름다운 미녀를 좋아하면 고생한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기획사 측은 설명한다)는 샤이니, 나아가 아이돌계의 삼성(?)이라고 불리우는 SM 엔터테인먼트의 향후 기획 방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곡이다. 최근 미국 진출을 선언한 보아의 'Eat You Up'과 음악 스타일면에서만 보자면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5월말, 샤이니가 '누난 너무 예뻐'라는 곡을 들고 나왔을 때 나는 사실 의아했다. 실로 '지금 현재' 세계 음악 시장은 파워풀한 클럽 댄스튠이 영향력이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큰 게 분명한데, 도대체 왜 팝알앤비일까? 힙합 계의 큰 형님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도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지원 사격을 받고 있는 마당에, 컨템퍼러리 밴드라면 적어도 지글거리되 불필요하지 않은 전자음 하나는 심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팀의 방향과 실로 '유럽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니카풍의 패션'을 도입했다는 디자이너 하상백의 컨템퍼러리한 의상에 비해 들고 나온 곡이 너무 말랑하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곡 자체의 등장 시기는 적절했고, 타겟층도 너무 눈에 보인다 싶을 정도로 분명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후 '누난 너무 예뻐'에 이어 등장한 곡은 마치 파워레인저 형, 누나들의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패션이 돋보이던 '산소 같은 너'였다. '7~80년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펑키한 디스코 풍의 음악'이라고 기획사측이 설명한 이 곡은 1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좀 더 '컨템퍼러리 밴드'라는 이들의 방향성에 가까이 근접한다. 이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1집 정규 앨범에서, '산소 같은 너'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이 대체로 장롱에 넣어두었다가 급히 먼지를 털고 꺼내놓은 느낌이 컸지만 말이다.

지나간 알앤비, 70년대 풍의 펑키한 디스코 음악까진 다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샤이니가 들고 나올 타이틀곡에는 분명히 묵언적으로 요구되는 게 있었다. 이를테면, '너희들이 정말 컨템퍼러리 밴드라면 이젠 진짜 동시대의 음악을 들고 나오란 말이야!'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지글지글한 음악을 들고 나와야지 지금 현재의 음악이라는 건 아니지만, 신곡 '아.미.고'는 전세계 팝시장의 마이다스 손으로 불리우는 팀발랜드나 넵튠스같은 귀신같이 잘 짜여진 클럽풍 음악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들의 영향이 상당 부분 묻어나있다. 말하자면 그간 샤이니의 음악 중 가장 2008년 다운 곡이란 말이다. 일단 노래 전체를 아우르는 지글거리는 효과음과 뚜렷한 훅부터가 '아, SM이 이제서야 원의도의 샤이니를 보여주려나보다'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에 '아.미.고'를 굳이 메인 디쉬라고 하지 않아도 '누난 너무 예뻐'와 '산소 같은 너'는 자동적으로 애피타이저가 된다.

콜드 하트 샤이니, 콜드 아이스 샤이니

그럼 이제 곡 자체를 가지고 얘기해보자. 곡은 처음을 알리는 신호조차없이 시작되는 'Cold Heart Baby, Cold Ice Baby'라는 랩핑을 뒷받침하는 건 가장 최소의 비트와 훅이다. 허나 이후 '야,야,야/만났다/반했다/그녀에게 반했다'까지 듣고 나면 '아!'하고 무릎이 탁 쳐진다. 정확히 3번 루핑된 '야,야,야'는 분명 클럽 DJ가 클럽에서 CDJ(DJ가 사용하는 CD 플레이어 쯤으로 해둡시다)에 CD를 넣고 루프버튼을 눌렀을 때 나는, 이젠 익숙하다못해 조금은 뻔해져버린, 그 소리니까 말이다. 물론 리드보컬 종현이 '사랑해줄 멋진 남'이라고 본인의 나이 답지 않은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듯 길게 바이브레이션을 뽑는 부분과, 곡의 제목인 '아미고'를 반복해서 외치는 후렴구에선 편곡자 유영진의 H.O.T부터 10년 이상 지속되온 'SM표 댄스 음악'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예 기획사에서는 'SM Performance'의 약자 'SMP'라는 이름으로 SM 가수들의 음악 스타일을 정의해버렸다.) 스타일이 곡의 완성미를 해쳤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느껴진다. 허나 이러한 종현의 외침 뒤에는 '우리 이번에는 작정하고 클럽 댄스풍 음악을 들고 나왔다. 이 곡이야말로 샤이니가 말하고자하는 진짜 컨템퍼러리한 노래야!'라는 말이 생략되어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분명 무리수는 없을 것이다.

다소 지저분하다 싶을 정도로 지속되는 노이즈와 방송에서 편집될 것을 의식한건지, 곡의 농도에 비해 비교적 짧게 느껴지는 러닝 타임이 아쉬움으로 남는 걸 빼면 '아.미.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클럽 댄스풍의 대중 음악이다. '아미고'라는 동타이틀의 가사가 반복되면서, '누난 너무 예뻐'나 '산소 같은 너'보다 입에 감기는 느낌이 오히려 더 짙어졌다. '따라부르는 곡'이라는 면에서 전자보다 대중을 더 의식했다는 의미다. 물론 클럽에 갈 나이조차 되지 않은 10대 소년들의 지나치게 성숙한 가사가 아쉽긴 하지만 역으로 이는 '누난 너무 예뻐'보다 더욱 직설적으로 '누나'들에게 소구한다. 

지난 27일, 인기가요 의 첫방송은 이들이 데뷔 5개월차 신인이라고는 조금은 믿기 어려운 농익은 무대였다고 할 만 했다. 리노 나카소네의 공중을 향해 거침없이, 그러나 세련되게 내지르는 안무가 아닌 듯 하여 다소 아쉬웠지만 말이다. 정규 1집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등장한 '아.미.고'는 시기면에서, 그리고 음악적 스타일면에서 샤이니가 꺼내는 2008년 신인상을 향한 직설적인 통첩이자, 이들에겐 운명의 수레바퀴같은 곡이다. 이를  전진의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오직 샤이니 본인들, 나아가 SM엔터테인먼트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 수정:10/28]

   


1. 인어공주의 세바스찬도, 'sexual sportswear'로 클럽신 안팎을 뜨겁게 달군 세바스티앙 뗄리에도 아니다. Ed Banger Records의 소리없이 강한 프로듀서, SebastiAn. 그가 지난 9월말 리믹스 앨범을 발표했다. (게으르군요;)


SebastiAn - REMIXS

Ed Bangers의 모션 그래픽은 뮤지션이자 아트 디렉터 So Me가 맡고 있다. Justice의 'DVNO' 'D.A.N.C.E.' 모두가 So Me의 작품이다. 앨범 표지 디자인이나 티저 영상이나 일명 'Ed Banger Art' 특유의 거부감없는(?) 빨강이 빠지지 않는다. 

아무튼 클럽 뮤지엄을 통해서 Ed Bangers 식구들이 한국으로 격하게 내한하고 있다. 비교적 조용히 왔다간 Vicarious Bliss와 Krazy Baldhead를 시작으로 지난 8월에 거하게 왔다간 Justice (저스티스는 앤써였지만), 저번 주 왔던 Steve Aoki+Uffie, 이번 주 금요일에 오는 Busy P. 내한 리스트에 안타깝게도 SebastiAn은 빠져있지만 그도 언제 한국에 올지 모른다. 리믹스 앨범도 버선발로 환영하고 싶지만 'Ross Ross Ross'나 지난 여름의 'Motor'의 뒤를 잇는 따끈따끈한 핫튠이 어서 빨리 나와주길!

SebastiAn "Remixes"
Album Disponible
http://www.myspace.com/0sebastian0

1 - INTRO
2 - Revl9n “Walking Machines”
3 - Daft Punk “Human After All”
4 - Mylo “Paris Four Hundred”
5 - The Rapture “Get Myself Into It”
6 - Editors “Camera (Fader)”
7 - The Rakes “ We Danced Together”
8 - Kelis “Bossy”
9 - The Kills “Cheap And Cheerful”
10 - Kavinsky “Testarossa Autodrive”
11 - Benjamin Teves “Texas”
12 - Das Pop “Fool For Love”
13 - Bloc Party “Still Remember”
14 - Sebastien Tellier “Sexual Sportswear” (마침 위에서 언급한 섹슈얼 스포츠웨어가! 방가방가)
15 - Klaxons “Golden Skans”
16 - Annie “Happy With You”
17 - Nadiya “Tous Ces Mots”


2. 두근두근. 키츠네 메종 컴필레이션 6탄 10월 27일 발매!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정 언니를 앓는 밴드맨들  (4) 2008.11.08
매쉬업 앓이  (0) 2008.10.29
귀가 즐거운 한가위 뉴스  (0) 2008.09.13
autoKratz 뉴 앨범!!  (0) 2008.08.20
Kitsune Tabloid Compiled & Mixed by Digitalism  (0) 2008.07.14


[M/V] SHINee - 누난 너무 예뻐 (Replay)

대한민국에서 90년대 말에 학창시절을 보낸 70~80년대생이라면 교복입을 시절에 한 팀 이상의 아이돌 그룹에 눈독을 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스 미디어가 국민의 생활 자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대한민국이니까 말이다. 나 또한 TV 속 아이돌에 흥분하던 철부지 중학생이었다.

요즘 그 후로 유럽 인디록이다, 일렉트로다, 장르 구분에 빠져 정신줄을 놓았지만 최근부터는 나도 모르게 양가적 노선을 타게 되었다. 마이스페이스에서 재생수 100이 넘지 않는 해외의 베드룸 뮤지션과 TV에 틀기만 하면 나올 정도로 접근성이 높은 국내 아이돌에 대해 동급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관심엔 교복 입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아이돌에 대한 내 개인적 관심의 최대 방점은 데뷔 4개월의 병아리 신인, 샤이니가 찍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얼마 전의 포스팅에서 SM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그룹 샤이니의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어제 이들이 케이블 방송 Mnet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Mnet Countdown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결론만 듣고보면 누군가는 일개 케이블 방송의 순위 놀음이라고 누군가는 폄하할 수도 있겠으나, 서럽게 울며 트로피를 치켜들던 어린 소년들을 보자 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몇 자 적게 되었다.

지난 번 샤이니에 대한 글에서 '컨템퍼러리' 그룹인데 지나치게 음악은 과거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컨템퍼러리 R&B 보이 밴드'라고 하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최근, 아주 뒤늦게 들었다. 지나친 말장난일수도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컨템퍼러리=일렉트로 컬처'라는 내 머릿 속의 주관적인 도식 탓이 컸다. 개인적으로라는 말을 참 싫어하지만 '개인적으로' 잘 듣지 않는 두 가지 장르는 R&B와 트랜스인데, 세계 대중 음악계에서 리듬 앤 블루스의 힘은 매우 막강하며 그것이 우리 나라 대중 가요에 미치는 파급 효과 또한 굉장히 크다는 사실을, 나는 위 글에서 살짝 배제한 듯 싶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R&B의 입지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는 게 아니라 SG워너비, 씨야 등 가요계 상위 차트에서 대중 가수들이 들고 나오는 장르의 카테고리에 대한 얘기다.)

(삼천포)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하자면 알만한 R&B 싱어들의 외도인데, 간단히 서양에선 존 레전드. 동양에선 MISIA를 놓고 보자. 아트풀 도저(Artful Doger)류의 투스텝 개러지를 연상시키는 John Legend의 8월 발매 싱글 'Green Light'(feat.Andre 3000)은 전작 <Once Again>이 보여준 소울 충만한 넘버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이 곡을 듣는 순간 '아, 이러다 아민 반 뷰렌이나 데이비드 게타의 객원 싱어로 나서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MSTRKRFT가 선수를 쳐서 이 곡을 키츠네 컴필레이션에 실릴 법한 일렉트로 넘버로 변신시켜 놓았다. 또한 다음 주 26일 국내에 첫 내한하는 일본 소울 싱어 MISIA 또한 'Catch the Rainbow'라는 클럽 비트의 곡을 선보이며 변신을 꾀했다.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 싱글 'Everything' 이후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거라고 믿기 어려운 풍만한 보컬로 일본 열도를 감싸안던 그녀가, 하우스 비트라니! 리스너들의 의견이 이리저리 엇갈리고 있으나 이런들 어떠고 저런들 어떠하랴. R&B를 뚝심있게 고집해오던 그녀인 탓에 우리 입장에선 당장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계속 발전해서 OM Records 뺨치는 소울풀 하우스를 들고 나온다면 그 때도 야유를 보낼텐가! 싶을 정도로 나쁘지 않는 소화력을 보여준다. (역시 기본이 탄탄하고 봐야하는가)
(삼천포 끝)

다시 '컨템퍼러리 보이 밴드' 샤이니로 돌아와보자.

보통 '아이돌=통속 문화=저급 문화'라는 의견을 가진 이들은 '아이돌은 라이브보고 정 떨어진다' 더 심하게 얘기하면, '아이돌은 입 뻥긋거리는 참새들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샤이니의 경우는 이런 부분에서 많이 빗겨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샤이니는 보컬과 비보컬 라인이 유난히 뚜렷하다. 조금 지독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비보컬에 대한 보컬 능력의 기대치 자체를 불식시켜버렸을 수도 있다. 실로 민호와 태민에게 일정 수준의 보컬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TRF의 샘과 SPEED의 히토에, 다카코에게 우타다 히카루의 발성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이렇게 뚜렷한 파트의 구분은 아이돌이라는 말많고 탈많은 퍼즐의 제 자리를 맞추는데 상당 부분 도움이 된 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는 정 떨어질만큼 뚜렷한 기계적 분업화가 아닌, 아이돌다운 '유드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의 메카인 일본, 그 중 아이돌의 파트 분업화가 가장 잘 된 여성 그룹 SPEED의 경우를 들어보자. (그 전에도 MAX, 슈퍼 몽키즈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었던 그룹들이 있으나 '너무 먼 과거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일단 4명의 멤버에서 파트를 나누자면 보컬은 2명, 댄서는 2명이다. 리드 보컬 히로코의 낭랑한 목소리가 주가 되며 이를 메인 보컬 에리코가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준다. 리드 댄서 히토에와 다카코는 코러스와 댄스, 얼굴 마담 역할까지 야무지게 해결해서 괜찮은 조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스피드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뉴 싱글의 기본 판매량이 200~300만장일 정도였고 이후 개편된 모닝 무스메라든지, '클럽형 아이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퍼퓸 등 다양한 하이브리드형 아이돌의 탄생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 되어주었다.)

샤이니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만 17세라고는 다소 믿기 힘든 '세상 사랑 다 해본' 목소리 톤을 가진 종현의 보컬 베이스는 샤이니의 든든한 기반암이다. 아직 기본기를 닦을 시기인지라 '딱 이거다!'라는 뚜렷한 개성을 찾기는 다소 이르나 다양한 음역대를 넘나드는것은 물론, 곡 안에서 적당히 놀 줄 아는 탄탄한 기본기가 앞으로의 충분한 가능성을 예견해준다. R&B라는 장르에 잘 어울리는 소울풀한 보컬톤을 가졌으나 훵키한 '산소 같은 너', 현악이 난무하는 'Real'등의 댄스곡에서도 종현의 목소리는 무난하게 어우러진다.

이에 맑고 청아한 느낌의 온유의 목소리가 종현에게 쏠릴 수 있는 보컬 라인의 균형을 잡아준다. 반농담으로, 좀 더 크면 토이의 객원 보컬 라인을 노려봄직도 하다. 방송에서 부른 제임스 잉그램의 'Forever More'라든지, 토이의 '내가 잠시 너의 곁에 살았다는걸' 등을 들어보면 온유는 천성적으로 차분한 박자의 곡들을 완전히 가라앉히지도, 너무 뻔하게 만들지도 않는 보이스 컬러를 가졌다.

여기 '만능열쇠'라는 별명을 가진 KEY는 랩, 노래 모두 안정적으로 해낸다. 사춘기 소년 특유의 변성기를 금방 거친듯한 보이스 컬러를 가진 키의 색깔은 '만 16세 소년의 그것'이다.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던 멤버가 키였는데, 라이브에서 '이 쯤이면 틀릴 때도 됐는데?'라는 나의 걱정을 기대로 탈바꿈시킨 멤버다. 조금 과장하면, 모든 파트에 대한 키의 안정적인 소화력에서 샤이니의 가능성이 상당 부분 읽힌다고도 할 수 있겠다.

종현, 온유, 키가 샤이니의 보컬라인 이라면 랩과 댄스 파트는 민호, 태민이다. 샤이니의 숨겨진 열쇠 키와 상당히 저음 톤을 가진 민호는 랩을 담당하고 막내 태민은 리드 댄스와 종종 노래 파트를 맡는다. 민호는 샤이니 결성에서 상당히 많은 랩핑 연습을 한듯 한데, 민호의 화려한 외모에 SPEED의 다카코가 오버랩되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을 부르는 여유에서 '아, 민호가 단순히 얼굴 마담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이니 속에서도 아이돌인 막내 태민의 경우 '리드 댄서'라는 파트인만큼 댄스에 상당 부분 힘을 할애하고 있어 보컬 파트에 대한 기대가 다소 적은 편이나 소년다운 미성이 샤이니의 컬러와 무난하게 어울리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아직 병아리 신인이라는 것과 '아이돌' 특성상 프로듀서와 기획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들을 봤을 때에도 샤이니는 선배들, 동시대의 아이돌 그룹들과의 차별성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1집 앨범 타이틀 '산소 같은 너'의 격한 안무 속에서도 이들은 꿋꿋하게 핸드 마이크를 든다. '우린 이만큼의 춤을 추면서도 이만큼의 라이브를 한다'는 적당한 자신감도 보인다.

앞으로 샤이니의 행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번의 포스팅에 다시 한 번 자기태클을 걸자면 샤이니의 정규 1집 앨범은 '산소 같은 너'가 타이틀곡이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을 수도 있다. R&B도 발라드도 아니고 듣도보도 못한 덴마크산 '훵키'한 '댄스'곡이라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충분한 난제였을 거라는 의견이다. 장르적 도전은 좀 미루더라도, 일단 이들이 아이돌계에서 '컨템퍼러리 보이 밴드'로서의 균형을 잡는 게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샤이니가 연예계라는 지긋지긋한 통속적인 상업의 블랙홀 속에서 '컨템퍼러리 보이 밴드'라는 초심의 마음 그대로 통속 예술 속에서의 진정한 '아이돌리즘'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쉽게 말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아이돌 그룹의 가능성에 충분한 기대를 걸고 싶다는 말이다.

국외 소식
-------------------------------------------------------------------------------------


Bloc Party, 3rd Album <INTIMACY>

개러지, 포스트 펑크, 누록 신에 혜성처럼 등장한 블록 파티의 디지털 음원이 공개되었네요. 정규 앨범은 10월말 발매라는데 미리 선수치셨나 봅니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간혹 클럽에서 DJ SET으로 선다는 웹 플라이어를 몇 번 봐서 조금 걱정도 되고 의아하기도 했는데, 쓸데없는 설레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끝내주는 앨범으로 돌아올 줄은 기대도 상상도 못했습니다. 눈물이 다 날 지경이네요. 1,2집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매머드급 핵폭탄 쇼크네요. 내년에는 내한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SebastiAn, REMIX Album
Ed Bangers의 꽃미남 트랙 메이커 SebastiAn이 새 앨범도 아니고 새 싱글도 아니지만 9월 29일에 리믹스 앨범을 발매한다네요. The Kills의 노래 한 곡이 선공개 되었네요. 어서 풀 앨범이 공개되길 기대해봅니다.


국내 소식
-------------------------------------------------------------------------------------

언니네 이발관을 잊었나요?
지난 11일 제2회 충무로 국제 영화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걸출한 뮤지션들의 공연 중 가장 빛났던 것은 구린 음향마저 무색하게 만들던 언니네 이발관의 라이브였습니다. 세렝게티, 임주연 등의 세션들과 함께 한 전매특허 불투명 청정 곤약 사운드! 굳이 간을 하지 않아도 본연의 맛 자체가 빈 속을 꽉 채우는, 언니네표 모던록의 향연이 절정을 이루었는데요. (단독 콘서트는 가보지 못해서 모르겠으나) 특히 '아름다운 것' '인생의 금물'은 '이렇게 평범하고 밋밋하게 만드는 것도 힘들텐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성도 높은 넘버였습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앙코르곡으로 셀프 타이틀인 '가장 보통의 존재'를 부르지 않고 <꿈의 팝송> 앨범에 수록된 '나를 잊었나요?'이 선택됐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나를 잊었나요?'가 그렇게 록킹한 버전으로 탄생할 줄이야. '잘 봐, 이따위 애를. 당신 앞에 서있는 걸'이라는 처절한 가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편곡이었습니다.
오랜 산고의 시간 끝에 새 앨범을 나타나 백김치도 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언니네 이발관. 그들의 앨범은 바닥을 깎고 깎고 또 깎아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평해진 모래 언덕입니다. 아무리 굴곡없는 길이라도 그 위를 걷는 청자의 입장에선 폐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가시를 꽂고서, 뮤지션의 산고를 그대로 느끼며 괴롭게 걸어갈 수 밖에 없군요. 채찍을 들지 않는 새디스트 언니네 이발관, 이들의 암묵적인 진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SM Concert in 상하이(上海)
페리에보다 상큼한 아이돌, 샤이니때문에 요즘 이비인후가 즐겁습니다. 그러던 찰나, 이들이 SM 콘서트 투어차 중국 상하이에 갔다네요. 슈퍼 주니어, 소녀시대 등 소속사 동료들이 동행한 모양인데요.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은 보아가 전치 6주의 골절로 인해 공연을 취소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10월 미국 진출을 앞두고 'Eat You Up'이라는 강렬한 힙합 넘버로 웹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보아. 중국에 있는 보아 팬들, 꽤나 울었겠어요.
16살이라는 나이에 일본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우타다 히카루도 부진했던 미국 진출. 보아의 방향성은 살짝 공개된 듯 한데, 곡의 풀버전이 공개되고 앨범이 나와봐야 대략의 점을 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이 보아를 일본인으로 오해하지만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보아의 미국 진출에는 아시아 대중 음악 시장의 흐름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SM엔터테인먼트의 차후 행보를 말해주는 중요한 키워드들이 숨어있는 듯 합니다. 12년 전, H.O.T.의 데뷔 이후 SM에게 그동안 특별한 '후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대중 가요계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걸음'씩 더 앞서는 대안을 제시해왔다는 평을 들어온 이들이니까요. 이번달 말 컴백하는 동방신기의 시청 광장 쇼케이스 (이 날 광장 앞에 위치한 P호텔 직원들에겐 유난히 힘든 하루가 되겠네요), 패션 산업 진출 등 입이 쩍 벌어지는 뉴스가 계속해서 들려오네요. 이대로 가다간 SM 아이돌을 향한 누나들의 자발적 농노 자청은 계속될 수 밖에 없겠어요.

-------------------------------------------------------------------------------------


※ 이 글은 블로그 주인 김로그의 개인적 취향에 가장 많이 의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쉬업 앓이  (0) 2008.10.29
SebastiAn REMIXS 발매(9월), KMC 6탄 발매(10월)  (0) 2008.10.15
autoKratz 뉴 앨범!!  (0) 2008.08.20
Kitsune Tabloid Compiled & Mixed by Digitalism  (0) 2008.07.14
타루와 오지은  (0) 2008.07.07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일단 정확한 정의를 알고 넘어가자. 이는 청소년층을 타깃으로 활동하는 배우, 가수 등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 아이돌의 시발점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있었다. 앞서 흔히 '오빠 부대'로 불리우는 팬덤의 시초는 '조용필'에 있었다.

더러 아이돌이라고 하면 매스 미디어라는 상업성이 농후한 집합의 속물적인 원소라며 색안경부터 끼고 '장르우월론'을 들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상당한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 있다. 이미 아이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코드이며 장르다. 범세계적으로 일정 나이를 넘어서서 아이돌이라는 코드를 그러한 오락의 자세로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기도 하고, 그 파워 또한 막강해졌다. (여기서 말하는 '파워'를 상술로 밖에 읽지 못한다면 참 안쓰러울 따름이겠다.) 아이돌이 오빠 부대나 몰고 다니는 겉멋든 딴따라 나부랭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R&B, 록, 일렉트로닉 처럼 하나의 장르이자 즐거움 자체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다치고' '찔리며' 자생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지켜봐주는 게 진짜 쿨한 리스너의 자세 아닐까. 장르의 우월을 나누는 것이 편의를 위한, 즐거움을 위한 구분이 되어야지 구분 자체를 위한 구분이어서야 되겠는가. 아이돌의 역기능만을 주시한 채 이를 아직도 10대 청소년의 치기어리고 얄팍한 놀이 도구이자 한철의 유행으로밖에 읽지 못한다면 그 문화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거나 다름없다. 아이돌 문화에서 21세기 대안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질적 성장을 위해 지금 우리가 가장 적절하게 취할 수 있는 자세아닐까.

21세기는 물병자리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오덕후의 시대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장르우월론부터 들고 나오는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오덕후다. 좋은 관심이든, 나쁜 관심이든 어쨌든 관심은 발전의 시작이니까.

[국내외 아이돌 추천곡 BEST (무작위)]
1. 소녀시대 - 소녀시대
2. 모닝 무스메 - LOVE 머신(1999), 러브 레볼루션21(2001)
3. 아라시(嵐) - A.RA.SHI (1999)
4. 샤이니 - 누난 너무 예뻐, 산소 같은 너 (2008)
5. 빅뱅 - 거짓말 (2008)
6. 핸슨(Hanson) - MMbBOp (1997)
7. H.O.T. - 행복 (2000)
8. god - 어머님께 (2000)
9. 젝스키스 - 커플 (2000)
10. 2PM - 10점 만점에 10점 (2008)
11. 핑클 - 영원한 사랑 (1998)
12. S.E.S. - 너를 사랑해 (1999)
13. SS501 - 4 Chance (2007)
14. 슈퍼주니어 - U (2007)
15. 원더걸스 - Tell Me (2007)
16. 서태지와 아이들 - 필승
17. 아이돌 - 바우와우
18. 언타이틀 - 날개
19. 김원준 - SHOW
20. 유승준 - 열정

여기서 잠깐 고민, 보아는 아이돌인가?

[M/V] 샤이니 - 산소 같은 너

바야흐로 90년대 후반부터 밀레니엄으로 넘어가던 때는 보이그룹 평천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빅뱅같은 등장 이후 H.O.T.와 젝스키스의 맞대결 구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보이그룹의 역사는 현재 동방신기, 빅뱅, SS501 등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가수와 엔터테이너의 경계선에서 나름의 뒤집고 쳐내기를 반복하며 국내 가요계의 노른자 한가운데에 섰다. 방송가의 답습된 몰개성의 고질병속에서 이들은 매체의 칭찬과 힐난을 동시에 받아냈다.  

H.O.T,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을 배출해낸 SM엔터테인먼트에서 올해 봄, 새롭게 등장한 샤이니도 구성 면에서 다소 안전한 선배들의 노선을 밟으며 시작한다. 5명의 인원, 15~19세 사이의 연령, 리드보컬과 랩퍼 등으로 이뤄진 파트 등이 그것이다. '컨템퍼러리 밴드'를 표방한 이들은 확실히 전자들에 비해 세련됐다. 해외 유명 가수들의 안무를 맡은 리노 나카소네의 안무는 부드럽고 이국적이며, 월드 컬처에 밝은 디자이너 하상백이 전담한 패션 또한 가요 프로그램에서 보기 드문 룩을 보여준다. 이로써 아이돌 그룹으로써 비주얼은 합격점. 그러나 이들은 패셔니스타이기 이전에 '가수'다.

우선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를 보자. 샤이니의 전세대라고 할 수 있는 90년경의 남성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에 담긴 담론은 물음표를 띄우게 만드는 사회 비판이나 사랑의 아픔에 한정되어 있었다. 가끔 가족과 팬의 이야기를 하는 정도랄까. 그러나 샤이니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안해도 될 말은 하지 않는다. 샤이니도 물론 그 나이 또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 발 나아가 요즘의 핫 이슈인 '연하남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타이틀곡 제목은 무려 '누난 너무 예뻐'. 그들보다 기껏 1~2살 많은 (아이돌에서 한 두 살은 기껏이 아니지만) 동방신기가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HUG), 빅뱅이 'I'm so sorry, But I love you'(거짓말)이라고 읊조렸던 건 이들에 비하면 소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누난 너무 예뻐서 남자들이 가만안둬' '그녀를 보면 나는 미쳐'라고 저돌적으로 이야기하는 소년들. 괴롭지만 발랄한 이들의 사랑 공식은 정녕 '컨템퍼러리'하다.

'누난 너무 예뻐'의 신선한 파장에 이어 최근에는 정규 앨범 <The SHINee World>가 발매되었다. 타이틀곡 '산소 같은 너'가 덴마크의 곡을 리믹스했다는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지만, 디스코와 펑키 리듬으로 일관된 튠은 이국적이고 신선하다. 하지만 타이틀곡을 제외하고 특별히 눈에 띄는 곡이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패션도 안무도 컨템퍼러리한데, 음악은 용두사미랄까. 타이틀을 제외하고는 이미 '선배'들이 수백번 해온 과거지향형 음악이 의외일 정도로 많다. 미니 앨범 속의 균형있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사.계.한.'이나 원색적인 댄스곡 'Real'같은,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곡들이 많이 들어있길 기대했는데 첫 앨범에 지나치게 겁을 먹은 걸까. 도전을 해줄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샤이니에게 도전의 시간은 앞으로 많다. 브라운관 갇혀 그저 그렇게 머무는 것을 넘어서 문화 자체를 정의하고자 한다는 점이 흥미롭고, 지나치게 멋있는 척 하지 않는 점이 쿨하다. R&B과 록발라드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도전과 실험의 불모지가 된 대중 가요계에 등장한 신인 아이돌 샤이니. 이들은 어쩌면 적지 않게 중요한 패를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 이들의 등장 시기는 분명 적절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돌 그룹에게 지나치게 웰메이드 앨범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이들이 앞으로 조금 더 도전적이고 과격해지길 바란다. 물론 대중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말이다. [20080903]

+ Recent posts

midnight madness :: midnight madness



검정치마. 팀명만 보고 유관순 열사의 그것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들에게 다소 무리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폄하하는 얘기가 아니라, 펑퍼짐한 아줌마 치마를 입히기엔 이들의 잘빠진 몸매가 아깝다는 얘기다. 재일교포 2세에게 한국산 김치의 우월함을 열토하고, 3개국의 피를 물려받은 재독교포에게 족발이 아이스바인(독일식 족발)보다 맛있다고 웅변할지언정, 그들은 오리진(origin)은 한국 본토의 감수성을 이해할 수 없다. 외국인이 조지훈의 승무에 등장하는 '나빌레라'라는 언어유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이렇게 애초에 기대치를 줄이고 듣는다면, 검정치마의 1집 [201]에 담긴 다국성(多國性)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대할 수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국적, 다출처의 양질의 음악이 모인 검정치마의 1집 은 분명 그 자체로 '백화점'이다.

다국적, 다장르로 마블링된 인디록
'한국 노래가 아닌 것 같아'라는게 이들의 음악을 접한 이들의 첫번째 반응이다. '강아지'나 '아방가르드 킴'의 도입부를 들으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세네팀 이상의 영미 밴드들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해줘' ,'Antifreeze'의 신디사이저의 '뿅뿅'거리는 전자음과 '구남과여라딩스텔라'류의 처연한 혼잣말에서는 이제 막 첫앨범을 발매한 신인 밴드의 로파이한 풋풋함이 묻어난다. 이렇게 검정치마는 내공없이는 절대 쉽게 넘을 수 없는 홍대와 뉴욕이라는 먼 거리를 구렁이 담 넘듯 드나든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것은 밴드 멤버들의 취향과 출신이다. 검정치마의 작곡/작사를 맡고 있는 팀의 중추 보컬 조휴일은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하드코어 밴드 '일진회'출신이고 드러머는 '라르크 엔 시엘(L'Arc~en~Ciel')의 유키히로와 뮤즈(Muse)의 도미닉을 좋아한단다. 아니, 뉴욕도 모자라 이제 일본까지! 라고 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어쨌든 검정치마는 우리에게 햄치즈 샌드위치와 김치를 같이 먹어도 맛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국 록신에서의 이들의 등장은 마치 아무 생각없이 한 판의 달걀을 하나하나 깨먹다가 오리알을 발견한 것마냥 갑작스러웠다. 스트록스(the Strokes)와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악틱 멍키스(Arctic Monkeys)등이 2000년 중후반의 영미권 록신을 뒤흔든 것에 비해 국내의 개러지 리바이벌 붐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검정치마, 파블로프 등으로 이어지는 섹시한 록의 네이밍을 이들의 레이블 명을 딴 '루비살-록(RubiSa-Rock)'이라고 불러도 그다지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안정된 프로필과 바이오그래피가 나온 후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들어지는, 개러지록 혹은 인디록이라는 장롱 안에 넣기엔 억울해서 자꾸만 쇼윈도에 걸게되는 '검정치마'다.




머릿 속이 온통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점철되었던 그 때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점점 동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던 요즘이었다. 가방에는 아이팟 터치 2세대나 아이스크림 폰을 담고, 한 손으론 유니클로(Uniqro)나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의 쇼핑백을 메고서 남자친구와 신사동의 '핫 스폿'이라는 곳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헤어지는 식의, 루트가 뻔한 데이트 코스들. (숨이 차다) 그 속에서 '저런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며 '무심한듯 시크한척'하고 싶었던 나는 '읽어야지'라고 생각만 했던 김사과의 장편소설 <미나>와 만났다. 아니, 재회했다.

학교를 다닐 때 '이 책이 아니면 글쓰는 사람이 아니죠'라는 말에 냉큼 3년치를 신청했던 한 문예 계간지 속에서 김사과라는 작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나로 하여금 대학교 3학년이라는 신분으로 데뷔한 소설가 한유주와 더불어 '그야말로 엄친딸이구나'라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주는 작가였다. 짧게 인터뷰한 기사만 봐도 그녀는 외고를 자퇴하고서 검정고시를 통해 천재 아니면 또라이만 모인다는 한예종에 간 데다가 '영이'라는 파괴적인 소설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어마어마하게 길고 화려한 수식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데뷔작 <영이>를 만났을 때도 나는 쉽게 소설의 호불호를 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등장은 한 마디로 '교란'이었다. 

소설 속에는 소위 엄친딸이라 불리는 여고생 '미나'와 그녀만큼 표면적으로는 잘난 여고생이나 미나로 인해 태생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수정'이란 두 인물이 등장한다. 친구의 자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다니게 된 미나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창 사춘기인 수정의 관계 또한, 소설 전체의 명징하지 않은 메세지만큼이나 묘하다. 애증을 넘어서, 질투를 넘어서, 설익은 분노를 넘어서 마치 휴화산이 폭발하듯 마무리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농밀한 내러티브는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로 하여금 개운함보다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교복을 입던 시절의 기억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추억이다. 나부터가 몇 년 전에는 소설 속의 소녀들처럼 길거리에서 파는 스타킹마냥 흔하게 널린 여고생떼 중 하나였기 때문일까. 고3 당시, 수능을 보고나서 한 학교는 보기좋게 떨어지고, 20점 하향한 학교도 어이없게 떨어지고, 희망을 갖고 있던 마지막 학교에서 예비번호 한 자리 수를 받는 3연패를 경험한 나. 나 또한 제도의 무수한 피해자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의 '3연패'는 나라는 인간의 20대 초반을 지배하는 피해망상을 고밀도로 증폭시키는 사건의 발단이었던 듯 하다. 재수를 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흘려들은 채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수험생이란 끔찍한 직업을 다시는 갖고 싶지 않았으며, 집안 형편 또한 재수를 할 처지가 못되었다) 단지 전공만 보고서 이름 없는 전문 대학의 추가 모집 원서를 집어넣었다. 학교 생활은 밋밋하단 것 빼고는 그닥 나쁘지 않았다. 나름대로 칭찬도 받고 상도 타며 잘 다녔다. 물론 남들처럼 적당 농도 이상의 재미가 가미된 대학 생활은 즐길 수 없었지만 말이다. (MT도 한 번도 가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남자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했던 지독한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 도서관에 가거나 음악을 들으며 서울의 이 곳 저 곳을 홀로 탐방하고 다니는 게 당시 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용기를 내서 음악 동호회로 몇몇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시를 쓰게 되었고 소설을 가끔씩이라도 찾아읽었던 게 그나마 그 때 잘한 거라면 잘한 일일까. 아무튼 '대학생의 특혜'라는 것을 여유롭게 누리기에, 내 캠퍼스 라이프는 너무 춥고 어두웠으며 가난했다.)

그렇게 내 10대와 20대의 길목은 피해 망상만 가득한, 세상에 대한 설익은 분노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그 피해의식은 지금도 미처 씻어내지못한 라면 찌꺼기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나.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나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미나와 수정을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리멸렬한 과거와 작별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어쩌면 적지 않게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수능 시험을 보기 전날, 나는 새벽 2시까지 끙끙거리며 울었다. 요즘도 자주 고등학생이 되거나,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푸는 꿈을 꾸는 나에겐 씻을 수 없는 그 때 이후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나는 10대 시절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고 실패도 하고 상처도 받았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내가 밟고 지나온 돌들이 모두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부터가 내가 이제 어느 정도는 철이 들었다는 의미였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나에겐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기준이 없다. 예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는 2008년의 나는 그저 <미나>의 책장을 덮으며 회색 시험지처럼 쓸쓸했던 모노톤의 추억들을 상기할 뿐이다. 지금도 인공 닭장에서는 수많은 무정란들이 태어난다.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알들의 숨구멍은 외부의 힘에 의해 철저히 막혀있다.

하이퍼리얼리티를 표방한듯한 서사와 지적 사고가 거세된 듯한 소녀들의 구어체가 짬뽕되어 낯설은 이야기로 탄생한 <미나>. 책 속에서의 미나와 수정은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잠바와 아디다스 가방처럼 유행조차 재단된 시대를 살아가는 소년소녀를 표방한다. 80년대에 태어난 독자들이 두 소녀들을 통해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결코 낯설지 않듯, 미나가 수정을 칼로 난자하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소설의 전체 흐름을 따져본다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비상식이 상식보다 더 상식적인 것으로 통하는 세상 아니던가. 미나와 수정이 당한 세상의 폭리에 비하면 수정의 손을 거친 미나의 죽음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제도의 시스템 내에서 영리하게 적응하나, 끝까지 지독한 기계로 남았던 미나가 천진할 정도로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서, 작가는 수정의 칼자루를 통해 세상을 조소하는 것이다. 이는 어른들이 '철없는 고딩들의 치기와 피해의식 과잉'이라고 치부하고 싶어하는, 더럽고 추잡한 세상의 단면 자체를 보여준다.

작가의 문체는 충분히 쿨하지만 쿨한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어를 가지고 노는 장난만 배운 일부 풋내기 작가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그녀는 찌고 쪄서 충분히 익혀낸 문장으로 세상의 목을 영리하지만 안전하게 비튼다. 사색이 사치가 되고 맹목적인 소비가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현재, 폐부를 찌르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파괴적이고도 젠틀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독자가 느껴야하는, 혹은 해야 하는 일은 미나와 수정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토록 충격적인 엔딩은 독자가 감상평을 남길 틈마저 일찌감치 거세해버리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이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나>의 결론엔 일말의 동정심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쓸쓸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GOOD

1. 지금-오늘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영상미 넘치는 필력.

2. 세상의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수정의 심정에 대한 파워풀한 서사.

BAD

1. 수정과 친구-연인 사이의 관계이자 미나의 친오빠인 민호에겐 뚜렷한 역할이 없다. 수정이 애증하던 엄친딸을 칼로 죽였다는 걸 이해하고 나면, 자기 친여동생 죽은 걸 보는 10대 소년의 태도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친오빠 맞아?

2. U2나 라디오헤드, 피오나 애플, 뷔욕 등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형과 누나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 듣는 소녀들의 대화 치고는 끝없이 가벼운 '수정'과 '미나'의 수다들. 차라리 빅뱅이나 원더걸스라고 하는게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3. 어린 애들이 담배를 너무 자주 태우는구나. 어차피 속담배는 아니겠지만.

호감, 비호감의 차원을 떠나 특정 인물의 실명을 곡 타이틀로 지정하는 뮤지션들의 의도는 뭘까?
사교계의 아이콘 '셀러브리티'라는 이름 하나를 내걸음으로써 
말을 조금 아끼려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가사전달을 떠나서
곡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조금 더 쉽게 하려는
그런 게 아닐까? 라고 추측해보고 싶은거다.

CSS - Meeting  Paris Hilton

엔지니언가 프로듀서가 바뀌어서 그런지 2집 [Donkey]가 많이 말랑했으나
CSS의 1집은 딱 적절하게 넘쳤다. 표면장력을 넘어선 맥주라도 어느 정도 핥아먹을 수 있는
기준이 있는데, 비유하자면 CSS 1집은 거품이 손잡이 직전까지 흘러내린 정도였달까.
전자가 너무 좋아서였는지 2집은 솔직히 김 좀 빠져서 밍밍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CSS는 이 곡으로 직접 패리스 힐튼도 만났다대.
(러브폭스랑 둘이 서있으니까 소인국과 대인국의 만남같았음;) 

The Teenagers - Starlett Johansson

슈게이징과 클럽록신 사이에서 적절히 줄타기를 해온 틴에이져쓰!
스칼렛 요한슨은 아니고 스'탈'렛 요한슨이다.
센스있어.

Maxmilian Hecker - Kate Moss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날 방에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밝은 날
햇살 받으며 들으면 지상낙원이 되는 곡.
단순한 피아노 선율이야말로 심프리 원더풀임을 보여주는 수작!
>지금은 내한공연중. 

Harvard - Look Like Chloe (Sevigny)

현재 AVALON이라는 이름의 클럽록 밴드로 활동중인 하바드.
Look Like Chloe의 정체는 다름 아닌 쉬크 결정체, 끌로에 셰비니였다고 한다.
노래가 없으니 이거라도;;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외로 따뜻한 남자, breakbot  (2) 2009.01.30
20090125 Digitalism in Korea  (2) 2009.01.27
매쉬업 앓이  (0) 2008.10.29
SebastiAn REMIXS 발매(9월), KMC 6탄 발매(10월)  (0) 2008.10.15
귀가 즐거운 한가위 뉴스  (0) 2008.09.13

싱크가 안맞으면 비루해질 가능성이 매우 큰 매쉬업.
감탄스럽고 놀라운 것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플로 도배된 것도 많다.
아래는 잘 알려져있고 그나마 쿵짝이 잘맞는 노래들;
더 찾아보고 싶으나 피곤함 (요즘 평균 취침 시간 11시)


Britney Spears vs Daft Punk - Gimme More vs HBFS


CSS vs Cut /// Copy - Alala On The Ice


Fergie vs Prodigy - Smack My Fergie Up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본좌는 지난 여름을 휩쓸었던 이것이 아닐까? 
 
빅뱅 마지막 인사 vs 손담비 Bad Boy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0125 Digitalism in Korea  (2) 2009.01.27
특정 언니를 앓는 밴드맨들  (4) 2008.11.08
SebastiAn REMIXS 발매(9월), KMC 6탄 발매(10월)  (0) 2008.10.15
귀가 즐거운 한가위 뉴스  (0) 2008.09.13
autoKratz 뉴 앨범!!  (0) 2008.08.20


올해 신인 아이돌 그룹 중 눈에 띄는 팀은 SM의 샤이니, JYP의 2AM과 2PM, 엠넷미디어의 다비치 등으로 비교적 쉽게 요약된다. 이 중 일명 '컨템퍼러리 밴드'('Comtemporary'라는 단어는 동시대의 트렌드를 이끌고 해답을 제시하겠다는 이들의 포부가 담겨있다고 기획사와 측은 설명한다)라는 이름을 들고 나온 샤이니(SHINee : '빛'을 의미하는 'shine'라는 어미에 '더블e'가 붙어 '빛을 받는 아이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기획사 측은 설명한다)는 올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보이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지난 24일 선공개한 신곡 '아.미.고.'(Amigo:스페인어로 친구, 여기서는 '아름다운 미녀를 좋아하면 고생한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기획사 측은 설명한다)는 샤이니, 나아가 아이돌계의 삼성(?)이라고 불리우는 SM 엔터테인먼트의 향후 기획 방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곡이다. 최근 미국 진출을 선언한 보아의 'Eat You Up'과 음악 스타일면에서만 보자면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5월말, 샤이니가 '누난 너무 예뻐'라는 곡을 들고 나왔을 때 나는 사실 의아했다. 실로 '지금 현재' 세계 음악 시장은 파워풀한 클럽 댄스튠이 영향력이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큰 게 분명한데, 도대체 왜 팝알앤비일까? 힙합 계의 큰 형님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도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지원 사격을 받고 있는 마당에, 컨템퍼러리 밴드라면 적어도 지글거리되 불필요하지 않은 전자음 하나는 심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팀의 방향과 실로 '유럽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니카풍의 패션'을 도입했다는 디자이너 하상백의 컨템퍼러리한 의상에 비해 들고 나온 곡이 너무 말랑하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곡 자체의 등장 시기는 적절했고, 타겟층도 너무 눈에 보인다 싶을 정도로 분명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후 '누난 너무 예뻐'에 이어 등장한 곡은 마치 파워레인저 형, 누나들의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패션이 돋보이던 '산소 같은 너'였다. '7~80년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펑키한 디스코 풍의 음악'이라고 기획사측이 설명한 이 곡은 1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좀 더 '컨템퍼러리 밴드'라는 이들의 방향성에 가까이 근접한다. 이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1집 정규 앨범에서, '산소 같은 너'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이 대체로 장롱에 넣어두었다가 급히 먼지를 털고 꺼내놓은 느낌이 컸지만 말이다.

지나간 알앤비, 70년대 풍의 펑키한 디스코 음악까진 다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샤이니가 들고 나올 타이틀곡에는 분명히 묵언적으로 요구되는 게 있었다. 이를테면, '너희들이 정말 컨템퍼러리 밴드라면 이젠 진짜 동시대의 음악을 들고 나오란 말이야!'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지글지글한 음악을 들고 나와야지 지금 현재의 음악이라는 건 아니지만, 신곡 '아.미.고'는 전세계 팝시장의 마이다스 손으로 불리우는 팀발랜드나 넵튠스같은 귀신같이 잘 짜여진 클럽풍 음악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들의 영향이 상당 부분 묻어나있다. 말하자면 그간 샤이니의 음악 중 가장 2008년 다운 곡이란 말이다. 일단 노래 전체를 아우르는 지글거리는 효과음과 뚜렷한 훅부터가 '아, SM이 이제서야 원의도의 샤이니를 보여주려나보다'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에 '아.미.고'를 굳이 메인 디쉬라고 하지 않아도 '누난 너무 예뻐'와 '산소 같은 너'는 자동적으로 애피타이저가 된다.

콜드 하트 샤이니, 콜드 아이스 샤이니

그럼 이제 곡 자체를 가지고 얘기해보자. 곡은 처음을 알리는 신호조차없이 시작되는 'Cold Heart Baby, Cold Ice Baby'라는 랩핑을 뒷받침하는 건 가장 최소의 비트와 훅이다. 허나 이후 '야,야,야/만났다/반했다/그녀에게 반했다'까지 듣고 나면 '아!'하고 무릎이 탁 쳐진다. 정확히 3번 루핑된 '야,야,야'는 분명 클럽 DJ가 클럽에서 CDJ(DJ가 사용하는 CD 플레이어 쯤으로 해둡시다)에 CD를 넣고 루프버튼을 눌렀을 때 나는, 이젠 익숙하다못해 조금은 뻔해져버린, 그 소리니까 말이다. 물론 리드보컬 종현이 '사랑해줄 멋진 남'이라고 본인의 나이 답지 않은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듯 길게 바이브레이션을 뽑는 부분과, 곡의 제목인 '아미고'를 반복해서 외치는 후렴구에선 편곡자 유영진의 H.O.T부터 10년 이상 지속되온 'SM표 댄스 음악'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예 기획사에서는 'SM Performance'의 약자 'SMP'라는 이름으로 SM 가수들의 음악 스타일을 정의해버렸다.) 스타일이 곡의 완성미를 해쳤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느껴진다. 허나 이러한 종현의 외침 뒤에는 '우리 이번에는 작정하고 클럽 댄스풍 음악을 들고 나왔다. 이 곡이야말로 샤이니가 말하고자하는 진짜 컨템퍼러리한 노래야!'라는 말이 생략되어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분명 무리수는 없을 것이다.

다소 지저분하다 싶을 정도로 지속되는 노이즈와 방송에서 편집될 것을 의식한건지, 곡의 농도에 비해 비교적 짧게 느껴지는 러닝 타임이 아쉬움으로 남는 걸 빼면 '아.미.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클럽 댄스풍의 대중 음악이다. '아미고'라는 동타이틀의 가사가 반복되면서, '누난 너무 예뻐'나 '산소 같은 너'보다 입에 감기는 느낌이 오히려 더 짙어졌다. '따라부르는 곡'이라는 면에서 전자보다 대중을 더 의식했다는 의미다. 물론 클럽에 갈 나이조차 되지 않은 10대 소년들의 지나치게 성숙한 가사가 아쉽긴 하지만 역으로 이는 '누난 너무 예뻐'보다 더욱 직설적으로 '누나'들에게 소구한다. 

지난 27일, 인기가요 의 첫방송은 이들이 데뷔 5개월차 신인이라고는 조금은 믿기 어려운 농익은 무대였다고 할 만 했다. 리노 나카소네의 공중을 향해 거침없이, 그러나 세련되게 내지르는 안무가 아닌 듯 하여 다소 아쉬웠지만 말이다. 정규 1집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등장한 '아.미.고'는 시기면에서, 그리고 음악적 스타일면에서 샤이니가 꺼내는 2008년 신인상을 향한 직설적인 통첩이자, 이들에겐 운명의 수레바퀴같은 곡이다. 이를  전진의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오직 샤이니 본인들, 나아가 SM엔터테인먼트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 수정:10/28]

   


1. 인어공주의 세바스찬도, 'sexual sportswear'로 클럽신 안팎을 뜨겁게 달군 세바스티앙 뗄리에도 아니다. Ed Banger Records의 소리없이 강한 프로듀서, SebastiAn. 그가 지난 9월말 리믹스 앨범을 발표했다. (게으르군요;)


SebastiAn - REMIXS

Ed Bangers의 모션 그래픽은 뮤지션이자 아트 디렉터 So Me가 맡고 있다. Justice의 'DVNO' 'D.A.N.C.E.' 모두가 So Me의 작품이다. 앨범 표지 디자인이나 티저 영상이나 일명 'Ed Banger Art' 특유의 거부감없는(?) 빨강이 빠지지 않는다. 

아무튼 클럽 뮤지엄을 통해서 Ed Bangers 식구들이 한국으로 격하게 내한하고 있다. 비교적 조용히 왔다간 Vicarious Bliss와 Krazy Baldhead를 시작으로 지난 8월에 거하게 왔다간 Justice (저스티스는 앤써였지만), 저번 주 왔던 Steve Aoki+Uffie, 이번 주 금요일에 오는 Busy P. 내한 리스트에 안타깝게도 SebastiAn은 빠져있지만 그도 언제 한국에 올지 모른다. 리믹스 앨범도 버선발로 환영하고 싶지만 'Ross Ross Ross'나 지난 여름의 'Motor'의 뒤를 잇는 따끈따끈한 핫튠이 어서 빨리 나와주길!

SebastiAn "Remixes"
Album Disponible
http://www.myspace.com/0sebastian0

1 - INTRO
2 - Revl9n “Walking Machines”
3 - Daft Punk “Human After All”
4 - Mylo “Paris Four Hundred”
5 - The Rapture “Get Myself Into It”
6 - Editors “Camera (Fader)”
7 - The Rakes “ We Danced Together”
8 - Kelis “Bossy”
9 - The Kills “Cheap And Cheerful”
10 - Kavinsky “Testarossa Autodrive”
11 - Benjamin Teves “Texas”
12 - Das Pop “Fool For Love”
13 - Bloc Party “Still Remember”
14 - Sebastien Tellier “Sexual Sportswear” (마침 위에서 언급한 섹슈얼 스포츠웨어가! 방가방가)
15 - Klaxons “Golden Skans”
16 - Annie “Happy With You”
17 - Nadiya “Tous Ces Mots”


2. 두근두근. 키츠네 메종 컴필레이션 6탄 10월 27일 발매!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정 언니를 앓는 밴드맨들  (4) 2008.11.08
매쉬업 앓이  (0) 2008.10.29
귀가 즐거운 한가위 뉴스  (0) 2008.09.13
autoKratz 뉴 앨범!!  (0) 2008.08.20
Kitsune Tabloid Compiled & Mixed by Digitalism  (0) 2008.07.14


[M/V] SHINee - 누난 너무 예뻐 (Replay)

대한민국에서 90년대 말에 학창시절을 보낸 70~80년대생이라면 교복입을 시절에 한 팀 이상의 아이돌 그룹에 눈독을 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스 미디어가 국민의 생활 자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대한민국이니까 말이다. 나 또한 TV 속 아이돌에 흥분하던 철부지 중학생이었다.

요즘 그 후로 유럽 인디록이다, 일렉트로다, 장르 구분에 빠져 정신줄을 놓았지만 최근부터는 나도 모르게 양가적 노선을 타게 되었다. 마이스페이스에서 재생수 100이 넘지 않는 해외의 베드룸 뮤지션과 TV에 틀기만 하면 나올 정도로 접근성이 높은 국내 아이돌에 대해 동급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관심엔 교복 입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아이돌에 대한 내 개인적 관심의 최대 방점은 데뷔 4개월의 병아리 신인, 샤이니가 찍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얼마 전의 포스팅에서 SM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그룹 샤이니의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어제 이들이 케이블 방송 Mnet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Mnet Countdown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결론만 듣고보면 누군가는 일개 케이블 방송의 순위 놀음이라고 누군가는 폄하할 수도 있겠으나, 서럽게 울며 트로피를 치켜들던 어린 소년들을 보자 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몇 자 적게 되었다.

지난 번 샤이니에 대한 글에서 '컨템퍼러리' 그룹인데 지나치게 음악은 과거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컨템퍼러리 R&B 보이 밴드'라고 하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최근, 아주 뒤늦게 들었다. 지나친 말장난일수도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컨템퍼러리=일렉트로 컬처'라는 내 머릿 속의 주관적인 도식 탓이 컸다. 개인적으로라는 말을 참 싫어하지만 '개인적으로' 잘 듣지 않는 두 가지 장르는 R&B와 트랜스인데, 세계 대중 음악계에서 리듬 앤 블루스의 힘은 매우 막강하며 그것이 우리 나라 대중 가요에 미치는 파급 효과 또한 굉장히 크다는 사실을, 나는 위 글에서 살짝 배제한 듯 싶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R&B의 입지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는 게 아니라 SG워너비, 씨야 등 가요계 상위 차트에서 대중 가수들이 들고 나오는 장르의 카테고리에 대한 얘기다.)

(삼천포)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하자면 알만한 R&B 싱어들의 외도인데, 간단히 서양에선 존 레전드. 동양에선 MISIA를 놓고 보자. 아트풀 도저(Artful Doger)류의 투스텝 개러지를 연상시키는 John Legend의 8월 발매 싱글 'Green Light'(feat.Andre 3000)은 전작 <Once Again>이 보여준 소울 충만한 넘버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이 곡을 듣는 순간 '아, 이러다 아민 반 뷰렌이나 데이비드 게타의 객원 싱어로 나서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MSTRKRFT가 선수를 쳐서 이 곡을 키츠네 컴필레이션에 실릴 법한 일렉트로 넘버로 변신시켜 놓았다. 또한 다음 주 26일 국내에 첫 내한하는 일본 소울 싱어 MISIA 또한 'Catch the Rainbow'라는 클럽 비트의 곡을 선보이며 변신을 꾀했다.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 싱글 'Everything' 이후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거라고 믿기 어려운 풍만한 보컬로 일본 열도를 감싸안던 그녀가, 하우스 비트라니! 리스너들의 의견이 이리저리 엇갈리고 있으나 이런들 어떠고 저런들 어떠하랴. R&B를 뚝심있게 고집해오던 그녀인 탓에 우리 입장에선 당장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계속 발전해서 OM Records 뺨치는 소울풀 하우스를 들고 나온다면 그 때도 야유를 보낼텐가! 싶을 정도로 나쁘지 않는 소화력을 보여준다. (역시 기본이 탄탄하고 봐야하는가)
(삼천포 끝)

다시 '컨템퍼러리 보이 밴드' 샤이니로 돌아와보자.

보통 '아이돌=통속 문화=저급 문화'라는 의견을 가진 이들은 '아이돌은 라이브보고 정 떨어진다' 더 심하게 얘기하면, '아이돌은 입 뻥긋거리는 참새들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샤이니의 경우는 이런 부분에서 많이 빗겨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샤이니는 보컬과 비보컬 라인이 유난히 뚜렷하다. 조금 지독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비보컬에 대한 보컬 능력의 기대치 자체를 불식시켜버렸을 수도 있다. 실로 민호와 태민에게 일정 수준의 보컬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TRF의 샘과 SPEED의 히토에, 다카코에게 우타다 히카루의 발성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이렇게 뚜렷한 파트의 구분은 아이돌이라는 말많고 탈많은 퍼즐의 제 자리를 맞추는데 상당 부분 도움이 된 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는 정 떨어질만큼 뚜렷한 기계적 분업화가 아닌, 아이돌다운 '유드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의 메카인 일본, 그 중 아이돌의 파트 분업화가 가장 잘 된 여성 그룹 SPEED의 경우를 들어보자. (그 전에도 MAX, 슈퍼 몽키즈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었던 그룹들이 있으나 '너무 먼 과거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일단 4명의 멤버에서 파트를 나누자면 보컬은 2명, 댄서는 2명이다. 리드 보컬 히로코의 낭랑한 목소리가 주가 되며 이를 메인 보컬 에리코가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준다. 리드 댄서 히토에와 다카코는 코러스와 댄스, 얼굴 마담 역할까지 야무지게 해결해서 괜찮은 조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스피드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뉴 싱글의 기본 판매량이 200~300만장일 정도였고 이후 개편된 모닝 무스메라든지, '클럽형 아이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퍼퓸 등 다양한 하이브리드형 아이돌의 탄생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 되어주었다.)

샤이니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만 17세라고는 다소 믿기 힘든 '세상 사랑 다 해본' 목소리 톤을 가진 종현의 보컬 베이스는 샤이니의 든든한 기반암이다. 아직 기본기를 닦을 시기인지라 '딱 이거다!'라는 뚜렷한 개성을 찾기는 다소 이르나 다양한 음역대를 넘나드는것은 물론, 곡 안에서 적당히 놀 줄 아는 탄탄한 기본기가 앞으로의 충분한 가능성을 예견해준다. R&B라는 장르에 잘 어울리는 소울풀한 보컬톤을 가졌으나 훵키한 '산소 같은 너', 현악이 난무하는 'Real'등의 댄스곡에서도 종현의 목소리는 무난하게 어우러진다.

이에 맑고 청아한 느낌의 온유의 목소리가 종현에게 쏠릴 수 있는 보컬 라인의 균형을 잡아준다. 반농담으로, 좀 더 크면 토이의 객원 보컬 라인을 노려봄직도 하다. 방송에서 부른 제임스 잉그램의 'Forever More'라든지, 토이의 '내가 잠시 너의 곁에 살았다는걸' 등을 들어보면 온유는 천성적으로 차분한 박자의 곡들을 완전히 가라앉히지도, 너무 뻔하게 만들지도 않는 보이스 컬러를 가졌다.

여기 '만능열쇠'라는 별명을 가진 KEY는 랩, 노래 모두 안정적으로 해낸다. 사춘기 소년 특유의 변성기를 금방 거친듯한 보이스 컬러를 가진 키의 색깔은 '만 16세 소년의 그것'이다.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던 멤버가 키였는데, 라이브에서 '이 쯤이면 틀릴 때도 됐는데?'라는 나의 걱정을 기대로 탈바꿈시킨 멤버다. 조금 과장하면, 모든 파트에 대한 키의 안정적인 소화력에서 샤이니의 가능성이 상당 부분 읽힌다고도 할 수 있겠다.

종현, 온유, 키가 샤이니의 보컬라인 이라면 랩과 댄스 파트는 민호, 태민이다. 샤이니의 숨겨진 열쇠 키와 상당히 저음 톤을 가진 민호는 랩을 담당하고 막내 태민은 리드 댄스와 종종 노래 파트를 맡는다. 민호는 샤이니 결성에서 상당히 많은 랩핑 연습을 한듯 한데, 민호의 화려한 외모에 SPEED의 다카코가 오버랩되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을 부르는 여유에서 '아, 민호가 단순히 얼굴 마담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이니 속에서도 아이돌인 막내 태민의 경우 '리드 댄서'라는 파트인만큼 댄스에 상당 부분 힘을 할애하고 있어 보컬 파트에 대한 기대가 다소 적은 편이나 소년다운 미성이 샤이니의 컬러와 무난하게 어울리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아직 병아리 신인이라는 것과 '아이돌' 특성상 프로듀서와 기획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들을 봤을 때에도 샤이니는 선배들, 동시대의 아이돌 그룹들과의 차별성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1집 앨범 타이틀 '산소 같은 너'의 격한 안무 속에서도 이들은 꿋꿋하게 핸드 마이크를 든다. '우린 이만큼의 춤을 추면서도 이만큼의 라이브를 한다'는 적당한 자신감도 보인다.

앞으로 샤이니의 행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번의 포스팅에 다시 한 번 자기태클을 걸자면 샤이니의 정규 1집 앨범은 '산소 같은 너'가 타이틀곡이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을 수도 있다. R&B도 발라드도 아니고 듣도보도 못한 덴마크산 '훵키'한 '댄스'곡이라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충분한 난제였을 거라는 의견이다. 장르적 도전은 좀 미루더라도, 일단 이들이 아이돌계에서 '컨템퍼러리 보이 밴드'로서의 균형을 잡는 게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샤이니가 연예계라는 지긋지긋한 통속적인 상업의 블랙홀 속에서 '컨템퍼러리 보이 밴드'라는 초심의 마음 그대로 통속 예술 속에서의 진정한 '아이돌리즘'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쉽게 말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아이돌 그룹의 가능성에 충분한 기대를 걸고 싶다는 말이다.

국외 소식
-------------------------------------------------------------------------------------


Bloc Party, 3rd Album <INTIMACY>

개러지, 포스트 펑크, 누록 신에 혜성처럼 등장한 블록 파티의 디지털 음원이 공개되었네요. 정규 앨범은 10월말 발매라는데 미리 선수치셨나 봅니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간혹 클럽에서 DJ SET으로 선다는 웹 플라이어를 몇 번 봐서 조금 걱정도 되고 의아하기도 했는데, 쓸데없는 설레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끝내주는 앨범으로 돌아올 줄은 기대도 상상도 못했습니다. 눈물이 다 날 지경이네요. 1,2집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매머드급 핵폭탄 쇼크네요. 내년에는 내한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SebastiAn, REMIX Album
Ed Bangers의 꽃미남 트랙 메이커 SebastiAn이 새 앨범도 아니고 새 싱글도 아니지만 9월 29일에 리믹스 앨범을 발매한다네요. The Kills의 노래 한 곡이 선공개 되었네요. 어서 풀 앨범이 공개되길 기대해봅니다.


국내 소식
-------------------------------------------------------------------------------------

언니네 이발관을 잊었나요?
지난 11일 제2회 충무로 국제 영화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걸출한 뮤지션들의 공연 중 가장 빛났던 것은 구린 음향마저 무색하게 만들던 언니네 이발관의 라이브였습니다. 세렝게티, 임주연 등의 세션들과 함께 한 전매특허 불투명 청정 곤약 사운드! 굳이 간을 하지 않아도 본연의 맛 자체가 빈 속을 꽉 채우는, 언니네표 모던록의 향연이 절정을 이루었는데요. (단독 콘서트는 가보지 못해서 모르겠으나) 특히 '아름다운 것' '인생의 금물'은 '이렇게 평범하고 밋밋하게 만드는 것도 힘들텐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성도 높은 넘버였습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앙코르곡으로 셀프 타이틀인 '가장 보통의 존재'를 부르지 않고 <꿈의 팝송> 앨범에 수록된 '나를 잊었나요?'이 선택됐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나를 잊었나요?'가 그렇게 록킹한 버전으로 탄생할 줄이야. '잘 봐, 이따위 애를. 당신 앞에 서있는 걸'이라는 처절한 가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편곡이었습니다.
오랜 산고의 시간 끝에 새 앨범을 나타나 백김치도 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언니네 이발관. 그들의 앨범은 바닥을 깎고 깎고 또 깎아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평해진 모래 언덕입니다. 아무리 굴곡없는 길이라도 그 위를 걷는 청자의 입장에선 폐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가시를 꽂고서, 뮤지션의 산고를 그대로 느끼며 괴롭게 걸어갈 수 밖에 없군요. 채찍을 들지 않는 새디스트 언니네 이발관, 이들의 암묵적인 진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SM Concert in 상하이(上海)
페리에보다 상큼한 아이돌, 샤이니때문에 요즘 이비인후가 즐겁습니다. 그러던 찰나, 이들이 SM 콘서트 투어차 중국 상하이에 갔다네요. 슈퍼 주니어, 소녀시대 등 소속사 동료들이 동행한 모양인데요.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은 보아가 전치 6주의 골절로 인해 공연을 취소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10월 미국 진출을 앞두고 'Eat You Up'이라는 강렬한 힙합 넘버로 웹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보아. 중국에 있는 보아 팬들, 꽤나 울었겠어요.
16살이라는 나이에 일본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우타다 히카루도 부진했던 미국 진출. 보아의 방향성은 살짝 공개된 듯 한데, 곡의 풀버전이 공개되고 앨범이 나와봐야 대략의 점을 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이 보아를 일본인으로 오해하지만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보아의 미국 진출에는 아시아 대중 음악 시장의 흐름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SM엔터테인먼트의 차후 행보를 말해주는 중요한 키워드들이 숨어있는 듯 합니다. 12년 전, H.O.T.의 데뷔 이후 SM에게 그동안 특별한 '후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대중 가요계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걸음'씩 더 앞서는 대안을 제시해왔다는 평을 들어온 이들이니까요. 이번달 말 컴백하는 동방신기의 시청 광장 쇼케이스 (이 날 광장 앞에 위치한 P호텔 직원들에겐 유난히 힘든 하루가 되겠네요), 패션 산업 진출 등 입이 쩍 벌어지는 뉴스가 계속해서 들려오네요. 이대로 가다간 SM 아이돌을 향한 누나들의 자발적 농노 자청은 계속될 수 밖에 없겠어요.

-------------------------------------------------------------------------------------


※ 이 글은 블로그 주인 김로그의 개인적 취향에 가장 많이 의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old pic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쉬업 앓이  (0) 2008.10.29
SebastiAn REMIXS 발매(9월), KMC 6탄 발매(10월)  (0) 2008.10.15
autoKratz 뉴 앨범!!  (0) 2008.08.20
Kitsune Tabloid Compiled & Mixed by Digitalism  (0) 2008.07.14
타루와 오지은  (0) 2008.07.07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일단 정확한 정의를 알고 넘어가자. 이는 청소년층을 타깃으로 활동하는 배우, 가수 등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 아이돌의 시발점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있었다. 앞서 흔히 '오빠 부대'로 불리우는 팬덤의 시초는 '조용필'에 있었다.

더러 아이돌이라고 하면 매스 미디어라는 상업성이 농후한 집합의 속물적인 원소라며 색안경부터 끼고 '장르우월론'을 들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상당한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 있다. 이미 아이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코드이며 장르다. 범세계적으로 일정 나이를 넘어서서 아이돌이라는 코드를 그러한 오락의 자세로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기도 하고, 그 파워 또한 막강해졌다. (여기서 말하는 '파워'를 상술로 밖에 읽지 못한다면 참 안쓰러울 따름이겠다.) 아이돌이 오빠 부대나 몰고 다니는 겉멋든 딴따라 나부랭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R&B, 록, 일렉트로닉 처럼 하나의 장르이자 즐거움 자체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다치고' '찔리며' 자생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지켜봐주는 게 진짜 쿨한 리스너의 자세 아닐까. 장르의 우월을 나누는 것이 편의를 위한, 즐거움을 위한 구분이 되어야지 구분 자체를 위한 구분이어서야 되겠는가. 아이돌의 역기능만을 주시한 채 이를 아직도 10대 청소년의 치기어리고 얄팍한 놀이 도구이자 한철의 유행으로밖에 읽지 못한다면 그 문화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거나 다름없다. 아이돌 문화에서 21세기 대안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질적 성장을 위해 지금 우리가 가장 적절하게 취할 수 있는 자세아닐까.

21세기는 물병자리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오덕후의 시대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장르우월론부터 들고 나오는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오덕후다. 좋은 관심이든, 나쁜 관심이든 어쨌든 관심은 발전의 시작이니까.

[국내외 아이돌 추천곡 BEST (무작위)]
1. 소녀시대 - 소녀시대
2. 모닝 무스메 - LOVE 머신(1999), 러브 레볼루션21(2001)
3. 아라시(嵐) - A.RA.SHI (1999)
4. 샤이니 - 누난 너무 예뻐, 산소 같은 너 (2008)
5. 빅뱅 - 거짓말 (2008)
6. 핸슨(Hanson) - MMbBOp (1997)
7. H.O.T. - 행복 (2000)
8. god - 어머님께 (2000)
9. 젝스키스 - 커플 (2000)
10. 2PM - 10점 만점에 10점 (2008)
11. 핑클 - 영원한 사랑 (1998)
12. S.E.S. - 너를 사랑해 (1999)
13. SS501 - 4 Chance (2007)
14. 슈퍼주니어 - U (2007)
15. 원더걸스 - Tell Me (2007)
16. 서태지와 아이들 - 필승
17. 아이돌 - 바우와우
18. 언타이틀 - 날개
19. 김원준 - SHOW
20. 유승준 - 열정

여기서 잠깐 고민, 보아는 아이돌인가?

[M/V] 샤이니 - 산소 같은 너

바야흐로 90년대 후반부터 밀레니엄으로 넘어가던 때는 보이그룹 평천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빅뱅같은 등장 이후 H.O.T.와 젝스키스의 맞대결 구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보이그룹의 역사는 현재 동방신기, 빅뱅, SS501 등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가수와 엔터테이너의 경계선에서 나름의 뒤집고 쳐내기를 반복하며 국내 가요계의 노른자 한가운데에 섰다. 방송가의 답습된 몰개성의 고질병속에서 이들은 매체의 칭찬과 힐난을 동시에 받아냈다.  

H.O.T,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을 배출해낸 SM엔터테인먼트에서 올해 봄, 새롭게 등장한 샤이니도 구성 면에서 다소 안전한 선배들의 노선을 밟으며 시작한다. 5명의 인원, 15~19세 사이의 연령, 리드보컬과 랩퍼 등으로 이뤄진 파트 등이 그것이다. '컨템퍼러리 밴드'를 표방한 이들은 확실히 전자들에 비해 세련됐다. 해외 유명 가수들의 안무를 맡은 리노 나카소네의 안무는 부드럽고 이국적이며, 월드 컬처에 밝은 디자이너 하상백이 전담한 패션 또한 가요 프로그램에서 보기 드문 룩을 보여준다. 이로써 아이돌 그룹으로써 비주얼은 합격점. 그러나 이들은 패셔니스타이기 이전에 '가수'다.

우선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를 보자. 샤이니의 전세대라고 할 수 있는 90년경의 남성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에 담긴 담론은 물음표를 띄우게 만드는 사회 비판이나 사랑의 아픔에 한정되어 있었다. 가끔 가족과 팬의 이야기를 하는 정도랄까. 그러나 샤이니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안해도 될 말은 하지 않는다. 샤이니도 물론 그 나이 또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 발 나아가 요즘의 핫 이슈인 '연하남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타이틀곡 제목은 무려 '누난 너무 예뻐'. 그들보다 기껏 1~2살 많은 (아이돌에서 한 두 살은 기껏이 아니지만) 동방신기가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HUG), 빅뱅이 'I'm so sorry, But I love you'(거짓말)이라고 읊조렸던 건 이들에 비하면 소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누난 너무 예뻐서 남자들이 가만안둬' '그녀를 보면 나는 미쳐'라고 저돌적으로 이야기하는 소년들. 괴롭지만 발랄한 이들의 사랑 공식은 정녕 '컨템퍼러리'하다.

'누난 너무 예뻐'의 신선한 파장에 이어 최근에는 정규 앨범 <The SHINee World>가 발매되었다. 타이틀곡 '산소 같은 너'가 덴마크의 곡을 리믹스했다는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지만, 디스코와 펑키 리듬으로 일관된 튠은 이국적이고 신선하다. 하지만 타이틀곡을 제외하고 특별히 눈에 띄는 곡이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패션도 안무도 컨템퍼러리한데, 음악은 용두사미랄까. 타이틀을 제외하고는 이미 '선배'들이 수백번 해온 과거지향형 음악이 의외일 정도로 많다. 미니 앨범 속의 균형있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사.계.한.'이나 원색적인 댄스곡 'Real'같은,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곡들이 많이 들어있길 기대했는데 첫 앨범에 지나치게 겁을 먹은 걸까. 도전을 해줄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샤이니에게 도전의 시간은 앞으로 많다. 브라운관 갇혀 그저 그렇게 머무는 것을 넘어서 문화 자체를 정의하고자 한다는 점이 흥미롭고, 지나치게 멋있는 척 하지 않는 점이 쿨하다. R&B과 록발라드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도전과 실험의 불모지가 된 대중 가요계에 등장한 신인 아이돌 샤이니. 이들은 어쩌면 적지 않게 중요한 패를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 이들의 등장 시기는 분명 적절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돌 그룹에게 지나치게 웰메이드 앨범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이들이 앞으로 조금 더 도전적이고 과격해지길 바란다. 물론 대중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말이다. [20080903]

+ Recent posts